여행은 단순한 이동을 넘어, 감성을 주고받는 좋은 기회다. 짐을 싸고, 지도를 검색하며, 목적지를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일상을 잠시 잊고 새로운 경험과 만남을 기대하게 된다. 마케팅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세계로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마케팅의 매력이다.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고객을 미리 만나고, 기존 고객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족시키며, 앞으로 원하게 될 그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고 평가받는 것이 바로 마케팅의 상상력이다.
▶300년 풍미의 플로리안과 변함없는 친구 스타벅스
최근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입국해 스위스로 향했다. 스위스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들른 곳은 베네치아였다. 나폴레옹의 응접실, 산마르코 광장(San Marco Piazza)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플로리안(Florian)이 있다. 1720년 12월 19일 오픈 이후 300년째 영업 중인 플로리안 카페는 베네치아에서 꼭 들려봐야 할 장소 중 하나다. 수많은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영감을 받았던 특별한 장소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자코모 카사노바의 내 삶의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등 그들의 이야기는 플로리안의 역사와 분위기에 깊이 새겨져 있다.
반면, 스타벅스(Starbucks)는 전 세계에 30,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며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친구와도 같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 속에서 스타벅스는 한결같이 따뜻한 커피와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익숙한 메뉴와 편안한 분위기, 낯선 도시에서 안식처, 일관된 품질은 어느 매장을 가더라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스타벅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전 세계 어디서든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플로리안과 스타벅스는 각각 독특한 매력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플로리안은 300년의 역사를 지닌 카페로, 그 깊은 풍미와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경험을 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한 잔의 커피 속에서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을 음미한다. 플로리안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교감의 장소다. 단순한 카페의 역할을 넘어 시대를 대표하는 괴테, 루소, 바그너, 모네가 사랑했던 향기가 지금껏 풍겨 나와 오늘날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원조로도 손색이 없다. 플로리안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과거의 향기와 현재의 감각이 어우러지며 특별한 감동을 받는다. 한 모금의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역사를 맛보는 순간이 된다.
스타벅스는 일관성이라는 맛으로 소비자들에게 안정감을 선사한다. 또한 세계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는 편리함이라는 여유를 즐기게 한다. 하지만 플로리안만이 주는 전통이라는 품격을 구현해내지는 못한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시대와 역사의 이야기는 플로리안만이 풍기는 향기인 것이다. 이처럼 서로의 독특한 매력은 커피 문화를 다양한 측면에서 풍요롭게 하여 세대를 아우르는 역할도 한다.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각각의 접근 방식에 그들만의 독특한 개성이 더해져 또 다른 흥미로운 마케팅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이 두 브랜드를 소비자들이 사랑하는 이유다.
▶스위스 마테호른(Matterhorn)
여행은 그저 쉴 휴(休)가 아니다. 다른 장소로의 단순한 이동도 아니다. 여행을 통해 이성과 감성을 주고받으며 사람(人)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스위스는 베네치아와는 또 다른 모습을 품고 있다. 청명한 호수에서 한가로운 시간, 알프스 산맥에서 트레킹하며 생각하는 순간을 아낌없이 보낼 수 있다. 베네치아에게 남겨진 문화의 시간과 설산의 대명사 스위스에서의 시간은 서로 보완되며 여행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게 된다.
단순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제공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선사하는 것이 마케팅의 매력이다.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초대장을 건네야 한다. 낯선 풍경과 문화에 초대받은 여행자에게 마케터도 신선하고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을 통해서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그 중심에 브랜드가 있다.
스위스에서의 첫날은 로이커바트(Leukerbad)에서 맞이했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도로를 따라 태쉬(Tasch)역에 도착한 후 체르마트(Zermatt)행 기차를 탔다. 스위스의 건강한 풍경을 감상하다 고르너그라트(Gornergrat)로 향하는 기차로 다시 한번 갈아탔다. 해발 3,089미터 정상으로 올라가는 동안 펼쳐지는 알프스의 파노라믹한 장관과 함께 등장하는 독보적인 마테호른의 모습은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들어 주었다.
고르너그라트 정상에 도착했을 때, 우뚝 솟은 마테호른의 전경은 이집트 피라미드 같았다. 땅에서는 월드 스타 마테호른과 눈 맞추려는 여행객들, 연신 스마트폰을 높이 들어도 좀처럼 걷히지 않는 구름에 애타는 탄성만이 흘러나왔다.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함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마테호른과 숨쉬고 있는 순간을 여행이라는 두 글자로 받아들였다.
마케팅의 또 다른 이름이 브랜드라고 정의하고, 스위스의 또 다른 이름은 마테호른이라 칭하고 싶다. 스위스 초콜릿 토블론(Toblerone)은 마테호른의 상징적인 피라미드 형태를 포장 디자인에 담아냈다. 마테호른을 찾는 많은 여행자들은 토블론을 구입해 산악열차에 오른다. 토블론 박스의 마테호른 봉우리와 실물 마테호른을 절묘하게 겹쳐 인증샷을 남기려는 열정을 전망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SNS에 업로드한 많은 사진들이 해시태그(hashtag) 물결을 타고 또 다른 여행자들을 불러들인다. 마테호른 버금가는 인기는 독창적인 디자인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단순히 맛있는 토블론 초콜릿이 아니라, 스위스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가 전, 우리는 종종 그곳의 상징적인 스토리텔링에 매료된다. 1912년 미국에서 설립된 파라마운트 픽처스(Paramount Pictures)의 로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로고는 마테호른의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배경 음악( Paramount fanfare)과 함께 영화의 웅장함과 권위를 강조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로고의 실재 주인공이 미국 유타주의 벤 로몬드 산(Ben Lomond Peak)이라는 점이다. 로고에 그려진 별들은 설립 당시 계약한 22명의 배우를 상징하지만, 현재까지 대중들은 여전히 알프스 산맥의 상징인 마테호른을 떠올린다. 이렇게 마테호른은 순수한 자연경관을 넘어, 다양한 브랜드에 스토리와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테호른은 단순한 산이 아니다. 마테호른은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여 지구촌 사람들에게 마케팅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마테호른을 직접 바라본 경험은 자연과 인간의 연결고리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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