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노력이 전부가 아니고 '운7 기3'이다. 미국 대선판이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총격 피습 사건이 트럼프의 승리가 아니라 해리스의 우위로 나타날 줄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문제는 트럼프든, 해리스든 '미국 우선주의' 정책 방향은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우선주의에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것이 '경제안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지금 미국은 경제안보 만능 시대다. 중국의 부상과 경제적 세계화, 급속한 기술 변화로 인해 미국에 대한 비전통적 위협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초강대국이다. 미국 정치권은 경제안보를 도구로 표심 끌어모으기 선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 모든 것이 경제안보가 되고 경제안보가 모든 것인 상황이다.
인공지능(AI)과 바이오까지 인류의 역사를 바꿀 첨단기술은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했지만 첨단기술의 역사를 보면 시발점과 종착역이 같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미국이 이미 40년 전에 집 나간 반도체 제조업을 다시 미국으로 돌린다는 것이 칩스법(CHIPS·반도체법)이지만 1인당 소득 8만달러대의 나라에서는 3교대할 숙련공이 없다.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아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 모두 미국 공장 가동 시기를 당초 계획보다 1~2년씩 연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장은 보조금 많이 주는 데 짓는 것이 아니고 시장 가까이 짓는 것이다. 한국도 일본과 소부장 전쟁에서 경험했지만 기술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 미국 기업의 세계 반도체 점유율은 50%이지만 미국의 생산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미국의 소비시장 점유율은 28%인 반면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는 63%나 된다. 반도체 산업에서 기술은 미국이 최고지만 생산과 시장은 아시아에 가 있다.
정부가 특정 산업과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은 공정경쟁을 해치는 악이기 때문에 제재해야 한다던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 사상 최대의 보조금을 주면서 하는 논리는 미국이 하면 경제안보고 다른 나라가 하면 공정경쟁 위반이다.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선거판은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외국 기업과 제품에 대해 경제안보를 무기로 경쟁적으로 더 강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더 강한 정책일수록 정치적 이익이 커지는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에서 어느 당이 승리하든 간에 미국 제조업의 부활과 외국 제품에 대한 규제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중국에 60% 보복관세를 얘기하자 바이든은 선수를 쳐 전기차 등에 100% 관세를 때린다고 발표했다. 해리스에 지지율이 밀리는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던 공약을 최근 20%로 올리겠다고 언급했다. 점입가경이다.
한국의 수출 비중을 보면 미국과 중국 양국이 각각 19%로 최대 수출 지역이다. 그러나 대중 무역은 2년 연속 적자지만 대미 무역은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사상 최대의 흑자를 보고 있다. 2023년에 한국의 대중 적자는 180억달러였지만 대미 흑자는 444억달러에 달했고 2024년 7월까지 누계로 대중 적자는 60억달러지만 대미 흑자는 312억달러로 2023년 연간 흑자의 70%에 달하고 있다.
미국 대선판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사상 최대 대미 흑자를 마냥 좋아할 수 없다. 미국 정치권의 표심 잡기와 경제안보의 중심에 있는 자동차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의 수출 호조가 대미 무역 흑자의 중심에 있고, 배터리와 반도체의 대중 소재 수입 증가가 대중 무역 적자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4년마다 미국의 선거판은 돌아오지만 문제는 미국 경제안보의 목록과 대상은 계속 확대만 되고 축소는 없다는 점이다. 이젠 대통령이 누가 되든 상관없이 경제안보를 구실로 한 첨단산업에 대한 규제는 상수다.
사격에서 표적을 보지 말고 조준선을 보라는 말이 있다. 정치권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과녁보다는 본질인 기술에 충실해야 한다. 미국에 결핍돼 있고, 절절히 원하는 기술과 생산 기반을 가지고 있으면 대통령이 누구든 보조금을 주면서 공장을 유치하고 대접받는다. 대미 관계는 이제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의 기술 경쟁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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