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견군폐'(邑犬群吠·'동네 개가 떼로 짓는다'는 뜻).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 시인·정치가 굴원(屈原)의 글에 나오는 표현으로, 소인배가 떼로 남을 비방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여기에는 '묻지마 따라하기'라는 의미도 있는데 후대 문인들이 즐겨 차용했다. "개 한 마리가 뭔가를 보고 짓자 백 마리 개가 그 소리만 듣고 짓는다. 한 사람이 거짓을 퍼뜨리면 온 사람이 진실이라고 퍼나른다."〈일견폐형(一犬吠形), 백견폐성(百犬吠聲), 일인전허(一人傳虛), 만인전실(萬人傳實)〉 후한(後漢)의 은둔 사상가 왕부(王符)의 잠부론(潛夫論)에 나오는 말이다.
동시대의 도학자들을 향해 "겉으로는 도를 말하나 속으로는 부귀를 바라며, 유학자의 고상한 옷을 걸쳤으나 행동은 개·돼지나 다를 바 없다"고 비난하고, 논어(論語)·맹자(孟子) 등의 유교 경전들도 진정한 도학이 아니라고 비판하다 탄핵돼 옥중에서 자진(自盡)한 명대(明代)의 반항적 사상가 이탁오(李卓吾)의 '수폐'(隨吠·따라 짖음) 비판은 더 가열(苛烈)차다.
"나는 오십세 전에는 한 마리 개였다. 앞에 있는 개가 뭔 가를 보고 짖으면 따라 짖었다. 누가 그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실실 웃기만 했다"(是余五十以前眞一犬也, 因前犬吠形, 亦隨而吠之, 若問以吠聲之故, 正好啞然自笑也已) 이탁오의 저서 '속분서'(續焚書)의 한 대목으로, 젊은 시절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해 온 자신, 그리고 자신과 같은 무리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이런 사실을 소개하는 것은 광복 79주년을 맞아 좌파와 좌파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쪽으로 붙은 것 같은 군상(群像)들이 뱉어 내는 '친일파' '친일사관' 타령 때문이다. 이들은 신임 독립기념관장을 '뉴라이트 친일파'라고 딱지를 붙여 사퇴를 요구했고, 수용하지 않은 대통령을 일제(日帝)의 밀정(密偵)으로 비유하거나 더 직설적으로 "조선총독부 10대 총독" "왕초 밀정" "정신적 내선일체(內鮮一體) 매국정권"이라고 했다.
이런 친일 몰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 정의기억연대 기부금 사용 내역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에 윤미향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일 세력의 부당한 공격"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소리가 진동했다. "완전하게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나라의 슬픈 자화상"(송영길), "청산되지 않은 친일 세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김두관),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의 부당한 공세"(더불어민주당 의원과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15명) 등등.
그 단순 논리가 참으로 용감했다. 용감하면 무식하다고 했나? 친일파에 대한 정확한 개념 규정도 없이 '윤미향을 비판하면 친일 세력'이라니. 윤미향의 자기방어 논리도 기가 막혔지만 윤미향의 주장을 그대로 주워섬긴 군상들의 행태는 더 가관이었다. 떼로 짖고(群吠), 따라 짖는(隨吠) 개꼴 아닌가.
이들의 친일파 타령은 실체가 없다. 우리가 문화, 경제, 산업에서 일본을 앞서거나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 지금 그 어디에 일제하의 '친일파' 같은 배역자가 있다는 말인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적시해 보라. 못 할 것이다.(그들은 이런 말하는 기자를 친일파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친일 몰이'는 허깨비에 홀린 몽유병(夢遊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쓰임새는 '우리 편의 방어와 상대편에 대한 공격'이다. 문 정권 때 집단 발작처럼 좌파 진영을 휩쓴 '죽창가' '노노 재팬'은 이를 잘 보여줬다.
좌우 정권을 넘나들며 국회의원 네 번에 국정원장까지 지내며 '양지'만 좇아 왔고, 조부가 독립유공자라는 것 말고 내세울 게 뭐가 있느냐는 소리를 듣는 광복회장의 '친일사관' 타령도 영락없는 '수폐'(隨吠)이다. 그는 광복회가 자체 진행한 광복절 기념식에서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친일사관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했다. 친일파가 없는데 어떻게 친일사관이 되살아나나? 광복회장이 말한 '식민사관'은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난센스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하에서도 부분적인 근대화는 이뤄졌음을 인정할 뿐이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합법화하지 않는다. 이게 사실이 아니면 증거로 논박(論駁)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식민사관' 운운하는 것은 허깨비에 홀린 몽유병이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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