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61> 천재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범재의 고뇌 '아마데우스'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모차르트 일러스트. 클립아트 코리아
모차르트 일러스트. 클립아트 코리아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푸시킨(1799~1837)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동기를 제공했다. 흔히 살리에리(1750~1825)를 천재 모차르트(1756~1791)를 시기한 범재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비엔나의 궁정 악장이었으며 베토벤과 슈베르트, 리스트, 체르니 등의 제자를 길러낸 최고의 음악가였다.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1번을 살리에리에게 헌정했으며, 모차르트가 죽은 후 아내 콘스탄체는 아들의 음악교육을 살리에리에게 맡길 정도로 신뢰가 두터웠다. 그러니 위의 이야기는 모차르트의 천재를 증명하기 위한 억지라 할 수 있다.

푸시킨은 빈에서 떠돌던 소문을 희곡으로 구성하여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의혹을 문학적으로 공식화했다. 범재일 수밖에 없는 많은 독자들이 그의 상상력에 흥미를 느끼고 공감했다. 밀로스 포만(1932~)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는 푸시킨의 작품과 피터 셰퍼(1926~2016)의 희곡을 텍스트로 삼았다. 피터 셰퍼 또한 푸시킨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희곡을 구상했다. '아마데우스'는 자만심으로 가득한 모차르트와 이를 질투하는 살리에리를 과장되게 그린다. 선택된 운 좋은 소수인 모차르트와 달리 매사에 진중하고 노력하는 살리에리는 대비되었다. 이 영화 때문에 모차르트는 건방지고 철없는 애송이 천재, 살리에리는 질투의 화신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더구나 살리에리는 동료의 재능을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살리에리 증후군'에 자신의 이름이 버젓이 올리는 불명예를 안았다.

영화
영화 '아마데우스' 포스터

영화는 부단히 노력해도 천재의 재능에 다다를 수 없는 범재의 고뇌를 보여준다. 살리에리는 성실함과 갈망만 주고 재능을 주지 않은 신을 원망한다. 실제로 모차르트의 천재는 당대 음악가들의 의욕을 꺾어놓았다. 그는 의혹과 불신, 경악과 질시의 대상이었다. 모차르트는 가는 곳마다 검증을 받으며 천재를 증명해야 했고 중상모략을 이겨내야 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과감하고 기존의 틀을 깨는 독창적인 것이었다. 명랑과 순수성으로 차 있었고, 꼬리를 물고 흘러나오는 악상을 악보에 받아 적었다. 음악 역사상 가장 탁월한 선율이라는 '피아노 소나타 K.331'의 경우, 기쁨과 사랑에 넘치는 1악장의 주제는 부단한 노력으로 이루어진 성과라기보다 천재의 직관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점은 누구라도 판단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부모들의 경쟁심을 촉발시켜 유럽 곳곳에 아류들이 나타났다.

천재란 남다른 통찰력과 직관, 독창성과 폭발적인 생명력의 일체화로 본다. 또 지식에 대한 욕구와 엄청난 수용 능력, 집중력, 비옥한 토양을 노력과 정성으로 가꾼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천재성도 그를 알아본 아버지의 체계적인 교육 덕분에 발현할 수 있었다. 천재들은 현실에서는 경제적인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이들의 격정은 우울증이나 신경쇠약, 강박증, 심하게는 정신착란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여기에서 불운한 천재, 천재와 광기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천재들은 일찍이 꽃을 피우고 일찍이 사라졌다. 모차르트도 서른다섯에 세상을 떠났고 모차르트 가문도 위대한 천재를 탄생시키고는 자식대에 문을 닫았다.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는 천재의 등장이 어렵다는 말을 한다. 획일화는 다양성과 개방성, 역동성을 무너뜨린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경직된 사회이며,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살리에리 증후군'을 앓고 있는 질투심 많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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