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재고용, 노인이 없는 나라로

김병구 논설위원
김병구 논설위원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노인 재고용(또는 고용 연장) 문제가 한국 사회의 가장 시급한 화두(話頭)로 떠오르고 있다. 2024년은 한국의 노인과 고용의 현상적인 변화를 뚜렷이 드러내는 상징적인 해다. 올해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본격화할 때 성장한 2차 베이비부머(1964~1973년생) 954만 명이 법적 정년(60세)에 순차적으로 진입하는 첫해다.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보다 200만 명 이상 많은 2차 베이비부머는 전체 인구의 18.6%를 차지한다. 또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웃도는 초고령사회의 진입(2025년)을 목전(目前)에 둔 해이기도 하다. 현재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지난 7월 10일 기준)는 1천만62명으로, 전체 5천126만8천12명의 19.51%를 차지한다. 시도별로는 대구가 지난 4월 말 기준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1%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것을 비롯해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절반이 넘는 9개 자치단체가 이 단계에 이미 진입했다.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초고령사회 진입이란 두 가지 현상은 곧바로 노인 빈곤 및 고독 문제와 직결(直結)된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2020년 기준)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노인 복지는 빈곤과 고독 문제를 일정 정도 해소할 수는 있겠지만, 완전한 해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궁극적인 해법은 노인 일자리로 귀결(歸結)된다. 경제성장기에 활동한 2차 베이비부머는 1차 베이비부머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고, 정보기술(IT)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 기술혁신과 산업구조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은퇴 후 사회적 활동과 일에 대한 의욕도 강하다. 역설적이지만, 일하는 노인이 늘어야 미래 세대도 부양 의무에 얽매이지 않고 잘 살 수 있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과 생산가능인구 추세를 감안할 때 2030년이 되면 청년 1명이 일해서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것으로 예측된다. 1999년까지만 해도 청년 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면 됐다.

현대자동차와 경북 안동병원은 국내에서 정년 후 재고용을 통한 노인 문제 해결의 모범 사례를 보여 준다. 현대차는 2019년 노사 합의를 통해 생산직 직원이 정년퇴직하면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달 임금 교섭을 통해 기술 및 정비직 근로자가 60세 이후에도 신입 사원 수준의 급여로 2년간(기존 1년) 더 일하는 것에 합의했다. 안동병원의 경우 지난 6월 정년 후 첫해에는 3년 계약, 그 이후 1년마다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달부터 65세 이상 퇴직자를 재고용해 70세까지 근무할 수 있게 한 도요타자동차, 고용 상한 연령을 70세로 높인 아사히맥주와 니토리 등 초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 기업의 노인 재고용 실태는 우리가 눈여겨볼 만하다.

노인을 위한 새 일자리 창출에는 한계가 있고 일방적인 정년 연장은 청년 취업난을 가중시킨다는 측면에서 재고용 또는 고용 연장이 노인 일자리의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떠오른다.

노인 재고용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임금체계와 근무 방식의 개편이 전제돼야 한다. 연공서열형 임금구조를 개편해 생산성 평가, 직무 난이도와 책임에 따라 급여를 차등화하는 등 유연한 임금체계의 도입이 필요하다. 정부도 노인 재고용에 대한 '계속고용장려금'을 대폭 확충해 기업의 숨통을 틔워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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