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작품 빌려드립니다”

태병은 아트리움모리 큐레이터

태병은 아트리움모리 큐레이터
태병은 아트리움모리 큐레이터

팬데믹 이후 급격하게 위축된 문화예술계 전반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이 등장했다. 그러한 시도들의 일환으로 시작된 '미술품 대여 지원 사업'은 지역 내의 공공기관에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대여, 전시함으로써 미술품 향유 문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예술가에게 작품 대여비를 지급하여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의 미술품 대여 사업 'show your art', 달서문화재단의 '모두의 갤러리', 수성아트피아의 '미술작품 대여제', 서구문화회관의 '오픈갤러리 서구 아트 쇼'가 진행되고 있다. 지원 자격은 대부분 사업을 추진하는 재단의 구 내에 거주 중이거나 작업실을 둔 예술가로 제한되며 작품 대여를 대가로 작가에게 지급되는 사례비는 기관에 따라 상이하나 보통 120만원~200만원의 금액으로 지원한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의 작품은 구 내의 공공기관, 즉 복지시설이나 도서관, 병원 등에 설치돼 1년여 간의 대여 기간 동안 전시된다.

선정된 작품들을 공공기관에 설치하기 위해 들러보면, 현실적으로 공공기관 내부의 공간들이 작품이 걸리기 위한 목적이 아닌 실용의 목적으로 조성돼 있기 때문에 기관 내에서 작품을 설치할 마땅한 공간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나 계단과 같이 작품을 최대한 노출해 모두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설치 위치를 선정하는 것이 마땅하나 1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한자리에 작품이 전시되는 점을 고려하면 작품의 보존이나 컨디션 유지에 대한 부분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도 작품이 걸릴 벽면이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작품을 안전히 지지할 수 있는 벽체인지, 못을 뚫을 수 있는 벽인지, cctv로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인지 등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장에서 기관 담당자들과의 충분한 상의를 통해 위치를 선정하고, 벽면의 재질을 고려하여 피스를 고정하거나 천장에 레일을 다는 등 각 기관의 환경을 고려한 세심한 설치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대부분 공공기관의 벽면이 전시장처럼 작품을 돋보이게 위한 새하얀 벽면이 아니라 나무, 시멘트, 철제, 유리 등 모두 다른 다양한 소재로 이뤄져 있기에 그러한 환경과 어우러 질 수 있는 분위기의 작품을 매칭하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벽의 너비나 소재, 높이 등을 모두 고려해 공간과 어우러지는 작품을 선별하는 것이다.

이처럼 '작품을 대여한다'라는 단순한 사업의 진행 내용 아래 고려해야 할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사업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전시가 끝난 후 작가들의 작업실 한구석에 잠들어 있던 작품들이 세상에 나와 노출되는 것을 통해 그것의 의미를 확장하고, 소득이 안정적이지 않은 예술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전시장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 작품을 노출시킴으로써 문화 사각지대에 관심을 가지고 일상의 틈새에 문화의 힘을 불어넣는 양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처음에는 값비싼 작품을 기관 내에 1년 동안이나 보관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작품을 걸었을 공공기관의 담당자나 감흥 없이 갑작스레 벽에 걸린 작품을 무심히 바라보았을 시민들이 대여 기간이 종료돼 작품이 철수되고 빈 벽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허전한 마음을 느낀다면 그것만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문화의 힘을 실감하게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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