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목탁 두드리고 절만 하는 줄 알았지"…힙해진 불교, 한번 볼래?

디제잉 공연 불교박람회, 방문객 80%가 10~30대
고양이 목탁·핫핑크 불상…근엄한 불교, 달라져
"과거에 얽매이지 마세요" AI 스님이 마음 치유
댕플스테이·나는절로 등 다양한 템플스테이 인기↑

지난 8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지난 8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2024부산국제불교박람회'의 공식 홍보대사이자 '힙한 불교'의 메신저 뉴진 스님(개그맨 윤성호)의 불경 EDM 디제잉 파티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고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이 귓가에 들려온다. 잠자고 있던 댄스 본능이 내 안에서 꿈틀대는걸? 근데 자세히 들어보니 가사가 좀 이상한데…? "월급이 안 올라서 고통! 내 주식만 떨어져서 고통! 체지방이 안 빠져서 고통!…이 또한 지나가리, 고통을 이겨내면 극!락!왕!생!"

무대에 선 디제이(DJ)도 범상치 않다. 머리를 밀고 승려복을 입은 스님이 DJ라고...? 어라, 갑자기 합장을 하고 폭주하는 EDM 박자에 맞춰 팔딱팔딱 뛰기 시작하는 스님. 그러자 무대를 보던 관객들도 열정적으로 따라 뛴다. 어허! 오해는 마시라, 여기 클럽 아니고 '2024 부산 국제불교박람회'다.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부산에서 처음 열린 국제불교박람회는 그야말로 'MZ들의 성지'였다. 반야심경으로 디제잉을 하는 뉴진 스님(개그맨 윤성호)과 불교 아이돌 '비텐스', 힙한 '핫핑크 불상'까지. 불교박람회는 MZ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로 채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현장을 찾은 5만명 이상의 관람객 중 10~30대가 약 80%를 차지했다는 후문이다. 고요한 산속에서 목탁을 두드리고 108배를 하며 정신 수양을 해야 할 것만 같던 불교가 이렇게 젊어지고 있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동자승 인형 탈을 쓴 사람이 돌아다녔다. 우리가 불교 박람회가 아니라 불교 축제를 온 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불교 박람회 맞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동자승 인형 탈을 쓴 사람이 돌아다녔다. 우리가 불교 박람회가 아니라 불교 축제를 온 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불교 박람회 맞다.
부산에 있는 사찰인
부산에 있는 사찰인 '범어사' 부스에 놓인 판넬. 현재를 중시하는 불교사상도 '힙'하게 전하는 센스에 주말& 팀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근엄하기만 한 불교는 NO!

지난 10일, 주말& 팀이 부산에 모였다. 거기에는 왜 갔냐고? 그것은 바로 '힙'이 가득하다는 '국제불교박람회'가 열리기 때문! "불교 또 나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재밌는 거 할까 봐" 걱정이 태산인 MZ들이 요즘 불교 트렌드 쫓느라 바쁘단다. 그러니 힙에 살고 힙에 죽는 힙생힙사 주말& 팀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연등으로 꾸며진 박람회 입구를 지나 행사장 안으로 들어서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승려 코스프레를 한 학생들과 거대한 동자승 인형 탈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발견한 것. 또 다른 쪽에는 불교 문양 컵받침을 직접 만들려는 인파로 북적이는 부스도 보였다. 우리가 불교 박람회가 아니라 불교 축제를 온 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불교 박람회 맞다.

커피 원두를 전용 그라인더가 아니라 맷돌에 넣고 곱게 갈아 내린
커피 원두를 전용 그라인더가 아니라 맷돌에 넣고 곱게 갈아 내린 '맷돌 커피'에 인파가 몰렸다.

이날 세 기자의 흥미를 자극한 것은 '맷돌 커피'다. 커피 원두를 전용 그라인더가 아니라 맷돌에 넣고 곱게 갈아 내렸다. 서양 문화인 커피와 동양 문화인 맷돌의 콜라보레이션이라니, 너무 색다르고 힙하지 않은가. 맷돌 커피 부스를 찾아갔더니 역시 인기 폭발이었다. 한참 줄을 서 마셔본 맷돌 커피의 맛은? "역시 좋은 원두는 도구를 탓하지 않는군!"

여기는 20대, 저기는 30대, 한눈에 봐도 많아 보이던 2030. 그들을 자세히 보니 저마다 봉투들을 들고 있었다. 그곳에는 평범한 나무 목탁이 아니라 귀여운 '고양이 목탁', 핫핑크 부처, '열반'이 쓰여있는 부채 등 색다르고 재미있는 불교 굿즈들이 담겨있었다. MZ들의 소비욕을 자극한 것은 모두 '불교인 듯, 불교 아닌, 불교 같은' 굿즈였다.

이날 박람회 내 한 부스에서 문구용품을 샀다는 박지현(29) 씨는 "금빛 부처님이나 분홍 연꽃 등 뻔한 불교용품이 아니라 귀엽고 아기자기한 문구류에 불교 감성을 조금 덧입힌 것 같은 상품"이라며 "다가가기 어렵고 근엄할 것만 같은 이미지인 불교에 트렌디한 감성을 결합한 게 색다르고 힙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힙한 불교문화의 상품성을 높게 보고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려는 MZ도 만났다. 충청북도에서 이곳을 찾았다는 대학생 김은별(22) 씨는 "충북에도 사찰이 많아서 관광 상품으로 불교 굿즈를 제작하기 위해 수요조사를 하러 박람회에 왔다"며 "젊은 사람들이 불교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걸 다시 한번 느껴서 굿즈를 열심히 제작해 보려 한다"고 했다.

금빛의 불상이 아니라 핫핑크 불상이 등장했다. MZ들의 소비욕을 자극한 것은 모두
금빛의 불상이 아니라 핫핑크 불상이 등장했다. MZ들의 소비욕을 자극한 것은 모두 '불교인 듯, 불교 아닌, 불교 같은' 상품들이다.

엄숙하고 근엄했던 이전의 불교문화와는 판이한 MZ식 불교문화의 확산을 50대 이상의 불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범어사 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는 50대 불교 신자 A씨는 "뉴진스님처럼 일반인이 승려복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을 보면 불교가 너무 가볍게 소비되는 것 같아 초반에는 걱정이 됐다"면서도 "그것을 계기로 젊은 사람들이 불교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고 이 종교를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된 것 같아서 기쁘다"고 평가했다.

◆평온은 덤! "묘하게 위로되네"

힙한 것만이 불교의 매력은 아니다.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의미하는 '열반'에 들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해야 한다는 불교의 사상도 귀를 쫑긋하게 한다. 경쟁사회, 물질만능 사회에 살아온 MZ에게 평온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박람회는 ▷명상이나 수행을 할 수 있는 상품을 전시하는 '명상문화전' ▷불교공예품을 볼 수 있는 '명상공예전' ▷불교철학에 기반한 미술 작품을 접할 수 있는 '명상예술전' ▷MZ들을 위한 '명상체험존' ▷무대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싱잉볼, 명상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명상체험존은 젊은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렸다.

싱잉볼, 명상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싱잉볼, 명상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명상체험존'은 젊은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렸다.

미래가 막막하기로는 주말& 팀도 뒤지지 않는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명상 체험을 하러 인파를 뚫고 명상체험존으로 향했다.

먼저 싱잉볼 체험. 싱잉볼은 명상도구로 활용되는 특수한 그릇이다. 싱잉볼을 평평하게 펼친 손 위에 올리고 스틱으로 싱잉볼의 상단을 친다. 그러면 소리와 진동이 손에 느껴지는데, 소리의 파장이 몸을 이완시켜 주고 볼이 만드는 진동이 불균형한 몸의 상태를 재정렬해 준다고 한다. 소리와 진동에 집중하니 진짜 잡념이 사라지는 기분.

다음으로는 명상 체험 중에서도 스트레스 검사를 받아봤다. 준비된 검사지를 잘 읽고 자신에게 맞는 상태에 체크 표시를 하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또 평소 걱정이 많아지거나 불안해질 때는 호흡을 크게 세 번 하기 등 일상 속에서 평온을 찾을 수 있는 간단한 호흡법도 배울 수 있었다.

싱잉볼을 평평하게 펼친 손 위에 올리고 스틱으로 싱잉볼의 상단을 쳐봤다. 소리와 진동에 집중하니 진짜 잡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는 최 기자.
싱잉볼을 평평하게 펼친 손 위에 올리고 스틱으로 싱잉볼의 상단을 쳐봤다. 소리와 진동에 집중하니 진짜 잡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는 최 기자.

스님과 인생의 고민을 나누고 해답을 얻는 시간도 가졌다. 근데 그냥 스님이 아니다. 무려 'AI 스님'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은 주말& 팀도 노트북 속 AI 스님에게 고민 상담을 해봐야지. 일단 "앞날이 걱정됩니다"라고 말해봤다. AI 스님은 뭐라고 조언해 주실까. 10초도 안 돼서 장문의 답변이 도착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불교에서는 현재 순간에 집중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부처님께서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에 대해 상상하지 말라. 현재 순간에 집중하여 마음의 평화를 찾아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연습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겠지만 당신의 마음을 응원합니다."

AI 답변이 뭐라고, 스님의 답을 들은 주말& 팀은 별안간 코끝이 찡해졌다. 정신건강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를 정도로 피로한 현대사회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의 평온을 이야기하는 불교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겠다. 힙함을 넘어 마음의 평화도 주는 불교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AI 스님에게 고민상담을 해본 주말& 팀. AI 스님의 답을 듣고는 별안간 코끝이 찡해졌다.
AI 스님에게 고민상담을 해본 주말& 팀. AI 스님의 답을 듣고는 별안간 코끝이 찡해졌다.

◆'서핑', '연애'…불교 인기 현재진행 중

불교문화 체험 콘텐츠 등으로 장벽을 낮추자 젊은 세대의 유입이 그만큼 증가한 불교는 그 인기를 이어갈 생각이다. MZ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반려동물', '연애'와 '서핑' 등을 대표적인 불교 체험 프로그램인 템플 스테이와 접목해 다양한 이벤트들을 기획하고 있다.

충북 미륵사는 지난 석가탄신일 주간에 '반려견과 함께하는 템플 스테이'를 진행했다. 이는 반려인과 반려견이 템플 스테이를 하면서 절 산책을 하고 점심 공양, 108배 체험, 연꽃등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올해 말까지 매달 1회씩 열릴 예정이다. 진행 회차가 적은데 신청자는 많아 쉽게 참여할 수 없을 정도라고.

미륵사 댕플스테이. 한국관광공사 제공
미륵사 댕플스테이. 한국관광공사 제공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올여름 2박 3일 '서핑 템플스테이'를 다음 달 25일까지 11차례 운영한다. 동해가 보이는 낙산사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진행하는 '파도 명상'과 모닝 요가, 서핑 강습까지. 불교가 진행하는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이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7월, 8월 회차도 예약이 금방 마감됐을 정도로 핫하다.

젊은 층들에게 인기 있는 연애 프로그램 '나는 솔로'에서 이름을 딴 '나는 절로'도 재개됐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칠월칠석에 낙산사로 30대 미혼남녀가 모여 서로 마음에 맞는 짝을 찾는 프로그램으로 2013년부터 진행돼 왔다. 경쟁률이 70대 1을 넘을 만큼 관심이 뜨겁다.

부산에서 열린 국제 불교 박람회의 열기를 드디어 대구에서도 느낄 수 있다. 다음 달 5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불교문화 엑스포가 개최될 예정이다. 온라인 사전 등록을 하면 무료입장이라고 하니 힙에 살고 힙에 죽는 사람이라면 한번 관람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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