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은 비로봉과 함께 이어진 봉우리들을 경계로 내륙 쪽을 내금강, 동해를 향한 쪽을 외금강, 외금강 남쪽을 신금강, 외금강의 동쪽 해안 일대에 펼쳐진 명승을 해금강으로 나눈다. 회양, 통천, 고성, 인제 등 4개 군에 걸쳐있어 '금강사군'이라했을 만큼 넓은 지역인 데다 바다까지 끼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질과 암석이 다양하고 자라는 식물과 서식하는 동물이 다르며 경관미도 차이 난다. 내금강은 부드럽고 우아해 여성적이고, 외금강은 웅건하고 빼어나 남성적이라고 한다.
계절에 따른 아름다움 또한 각각 달라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으로 불렀고, 눈이 오면 설봉산이라 했다. 명산의 대명사여서 전국에 '금강산' 브랜드를 따온 이름이 많다. 칠보산은 함경도의 금강산으로 불렸고, 경주에는 소금강산이, 거제도엔 해금강이 있어 금강산 못지않은 장관임을 자부했다.
금강산 절경을 말할 때 동해바다와 만난 해금강의 총석정을 빼놓을 수 없다. 강원도 통천군 총석리 바닷가 1km 구간의 바위 명승지다. 주상절리 현상으로 생긴 거대한 기둥 모양 바위가 바다 위로 우뚝 솟아 있기도 하고, 부서져 해안가에 누워 있기도, 절벽을 이루며 육지와 바다에 걸쳐 있기도 하다.
이인문의 '총석정'은 이 다발을 이룬 돌기둥인 '총석(叢石)' 중에서도 사람들을 가장 압도하는 입석(立石)을 가운데 두고, 와석(臥石)을 왼쪽에, 총석정이 위치한 벼랑인 좌석(坐石)을 오른쪽에 배치한 총석정도의 전형적인 구도다. 동해바다의 장쾌함과 유형별 총석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런 구도는 겸재 정선의 1711년(숙종 37) '풍악도첩'의 '총석정'에서 고안된 후 많은 화가들이 따랐다. 이인문을 비롯해 김홍도, 이재관, 김하종 등 화원화가들 뿐 아니라 무명의 민간화가들이 그린 민화 총석정도도 이런 구도가 많다. 총석정 주위 솔숲과 그 사이에 있는 매향비(埋香碑)가 함께 그려지는 것도 그렇다.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이라는 유난히 길고 회화적 이미지가 풍부한 호를 썼던 이인문은 도화서에 뽑혔던 화원화가다. 이인문은 총석정도의 전형적인 구도를 따르면서 내륙에서부터 절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시원하게 요약하고, 우뚝 솟은 돌기둥에 부딪치는 파도를 맑고 푸른 담채를 사용해 스스럼없는 필치로 청량하게 그려냈다. 총석정 좌우의 벼랑에는 분홍색을 점점이 찍어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금강산을 예찬하는 아름다운 그림도 많지만 글은 더욱 많아 고려 때부터 시와 산문, 여행기와 기록물이 이어졌다. 20세기만 해도 "금강은 세계의 산왕(山王)"으로 시작하는 최남선의 '금강예찬'(1928년)부터 분단 반세기 만에 열린 금강산 탐승의 길잡이가 되었던 유홍준 엮음의 '금강산'(1998년)까지 무수하다. 언제나 총석정에 가볼 수 있을까?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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