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좋은 출판사가 하나 있는 것은 좋은 대학이나 언론사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대구에도 1954년 1월 4일 이래로 현재까지 지역과, 책을 사랑하는 이웃들의 울타리가 되어준 '학이사'가 바로 그 산증인이다. '대구에 산다, 대구를 읽다'라는 출판 정신 아래 지역에서 좋은 글을 쓰는 작가들을 발굴하면서도, 책을 엮어내는 것 그 이상으로 지역 출판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개척해나간지 올해로 70년. 오는 9월 1일부터 학이사의 뿌리가 되는 이상사의 창업터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에서 한달간 창간 70주년 행사가 진행된다.
- 학이사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대구에서 명맥을 이어 가고 있는 지역 출판사다. 전신은 '이상사'로 당시 6.25 전쟁으로 피란을 내려온 다른 출판사들과 달리, 전쟁이 끝나고도 지역에 남아 중구 종로에 뿌리를 내렸다. 1954년 1월 4일, 대구에서 출판 등록을 하고 지역 출판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나의 경우 1987년 6월 29일 이상사의 편집부로 입사해 편집자, 영업사원으로 20년간 일했다. 이후 2007년에 창업주로부터 출판사를 이어받아 '학이사'로 이름을 바꿨다. 이상사 때부터 대구에서 출판을 시작한 지 올해로 70년이 됐는데 그중 38년의 세월을 함께했다. 이상사 당시엔 우리나라에서 옥편을 가장 많이 만드는 곳 중 하나일 만큼 옥편, 사서류, 교재 등을 중심으로 펴내다가, 학이사 때부턴 범위를 넓혀 종합 서적을 다루고 있다. 연간 30종 내외의 신간을 발간하고 있다.
- 출판뿐만 아니라 '책'을 매개로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신 걸로 안다. 현재 출판사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는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아카데미', '금요북토크', '대구의 인문, 담장을 넘다' 세 가지를 진행 중이다. 우선 올해로 10기를 맞이하는 독서아카데미는 선착순 15명을 모아 3개월간 책을 읽고 서평을 써보는 활동이다. 수료 후엔 작성한 서평들을 엮어 단행본으로 발간하고 독서모임을 통해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간다.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한 달에 한번 금요일에 테마를 갖고 진행하는 금요북토크도 올해로 2년 째 진행 중이다. 학이사에서 신간을 펴낸 저자들 중 지역에서 좋은 글을 쓰는 신인작가를 조명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했다. 작년에는 '찾아가는 동네책방'이라는 이름으로 동네 책방을 찾아 10회를 진행했다. 올해는 창사 70년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지역출판 70주년'이라는 이름 아래 10회를 시작했다. 내년에는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북토크를 통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내 독서운동을 장려해볼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학이사 외의 외부 저자지만 누구나 관심 있는 분야 또는 지역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가가 강연 형식의 '대구의 인문, 담장을 넘다'도 진행 중이다. 북토크와 같은 활동을 통해 지역 작가를 발굴해서 "우리 동네에 이렇게 좋은 저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기를 살려줄 수 있는 일은 지역 출판사인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가장 재밌고 보람을 느낀다.
- 긴 시간 지역에서 출판업에 종사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많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코로나 때다. 모두가 불안하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대구를 위해 지역 출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이전에 일본의 미야기에서 대지진이 났을 때 어느 마을 신문사에서 그 기간 동안 매일 벽에 신문으로 대자보를 쌓아 올렸던 것을 떠올리며 언젠가 끝이 날 이 시기의 삶을 기록물로 남겨보고자 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직업이 다른 시민 51명의 기록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와 현장에서 헌신한 의료진 35명의 기록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이다. 대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카카오톡을 통해 원고를 청탁했다. "중학교 졸업하고 한번도 글을 써본 적 없다" "생업을 할 수 없어 답답하던 차에 글로 마음을 풀어내니 속이 시원하다" 여러 반응 속 각자가 처한 상황과 심정에 관한 글을 받아 다듬어 바로 책을 만들었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혼란한 상황에서 출간된 이 책은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받아 번역판을 내고 NHK에서 줌(Zoom·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독자와의 만남을 갖기도 했다. 독자들 중에선 일본 의료진들이 가장 많았다. 기록물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고, 힘들었던 상황이었지만 지역출판사의 역할과 사명을 찾을 수 있었던 좋은 기억이다.
지역 출판의 어려운 점은 "지역출판사에서 만든 책은 공짜"라는 잘못된 인식과 전체적으로 책 읽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지 않겠나. 작가 양성에만 힘쓸 것이 아니라 독자 양성도 함께 필요하다. 독자가 돼야 작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서율이 분명 여기서 더 떨어지지 않고 반등할 거라 생각한다. 형태가 무엇이든 책에 재미만 붙일 수 있다면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도 전자책, 오디오북 등을 다 만들고 있다.
- 9월부터 창간 70주년 기념 사업도 진행된다고
▶그렇다. 9월 1일부터 한 달간 학이사의 전신 이상사의 창업 터에 위치한 종로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 2,3층에서 전시회를 진행한다. 현재는 맥주집이지만 70년 전엔 같은 자리에 출판사가 있었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좋아하시더라. 옛날 이상사 때 책부터 현재 학이사 책, 활판, 사진 인화지처럼 인쇄 과정이 담긴 자료 등을 누구든지 가게를 우연히 방문한 사람도 관람할 수 있게 전시할 예정이다. 9월 13일(금)에는 김봉규 작가와의 북토크가 우선 예정돼있고 중간중간 저자와의 만남도 기획 중이다.
- 마지막으로 지역 독서 산업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전에 있었던 독서동아리 지원 제도처럼 공공에서 민간에 더 관심을 갖고 책 읽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민간 차원에서 잘 진행하고 있는 독서 모임 등에게 도서관에 공간 많으니 여기서 해라는 식이 아니라 한번씩 책값을 지원해주는 그런 지원이 책 읽는 사람들에게 격려가 될 것이다.
출판의 경우, 대구출판산업단지를 잘 활용해봤으면 좋겠다. 대구 책 축제와 같은 콘텐츠를 기획해 독자-서점-출판사를 한자리에 모으고 지역책 구매를 유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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