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관참시(剖棺斬屍)는 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난 사람을 극형에 처하던 일이다. 무덤에서 관을 꺼내어 부수고 시신을 참수하는 것으로 대개의 경우 세상사가 바뀌었을 때 가해지는 정치적 보복인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에는 각종 사화 때 정적을 제거하는 부관참시가 성행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한명회다. 생전 권세를 틀어쥐고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그는 훗날 뒤바뀐 세상에서 무덤과 시신이 훼손된다.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도 부관참시가 두려웠던지 전국에 열두 개의 크나큰 무덤을 만들도록 했다.
서양에서도 죽은 뒤의 형벌은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대표적인 인물이 올리버 크롬웰이다. 영국 청교도 혁명을 성공리에 완수한 그는 찰스 1세의 목을 치고 호국경이 됐으나 불과 12년 뒤 '왕을 죽인 반역자'란 죄목이 붙어 시신이 토막 나는 운명을 맞는다.
사실 의학적으로는 죽은 사람의 몸을 해한다고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등 큰 의미는 없다. 즉, 부관참시는 실질적인 형벌이 아닌 과시적·정치적 행위로 해석된다.
잘 사는 나라를 위해서라면 당신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해서일까. 박정희 대통령만큼 정치적으로 부관되는 인물도 드물다. 걸핏하면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고 정치인·평론가에 의해 난도질당한다.
짧은 식견으로 볼 때 박 대통령이 죄가 있다면 ▷단군 이래 먹는 가난을 끊게 했고 ▷수출·무역 대국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새마을운동으로 부국의 초석을 다진 잘못밖에 없다. 물론 정부 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일부 인권이 침해된 것은 팩트다. 하지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두고두고 '파묘'해 목을 치는 건 잘못된 일이다.
최근 대구시가 동대구역 앞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이름 붙이고 '박정희 광장 표지판'을 설치한 것을 두고 야권의 공세가 거셌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표지판 설치가 불법이라며 대구시를 검찰에 고발했고, 민주당 소속 위원장이 있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도 동대구역 광장 명칭 변경에 대한 현안 보고를 받는 등 딴죽을 걸었다.
대구시장을 지낸 권영진 국토교통위원회 간사는 "시장 시절 동대구역 광장에 여러 시설, 조형물을 설치했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박정희 표지판을 세웠다고 지적하는 건 이념 공세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고무적인 토닥거림도 있었다. 박정희 이름 표기를 두고 대구시와 구미시 간 혼선이 인 일이다.
대구시가 '동대구역 광장' 이름을 '박정희 광장'으로 바꾸며 표지석에 'Park Jeong Hee'라 쓰자 박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시가 그가 생전에 쓴 'Park Chung Hee'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구시는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대부분이 2000년 고시된 표기법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Jeong'을 'Chung'으로 변경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고 설명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지난달 17일 "1964년 독일 방문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쓰신 방명록, 여권에 모두 'Park Chung Hee'로 영문 표기를 했다. 본인 표기법을 따르는 것이 국민 정서상에도 맞는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적었다.
대통령을 제대로 명명하고 정의해야 하는 게 바로 알기의 첫걸음이란 점에서 이런 다툼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큰 인물은 엄연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만큼 정치적 이해득실로 역사를 지우거나, 왜곡하는 정치적 부관참시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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