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론새평] 항의할 것인가? 이탈할 것인가?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김성준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자유로운 시장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교환과 거래를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의 자발성이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 생각과 의지에 따라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의사결정과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상품에 대해 크게 두 가지 행동으로 대응한다. 첫째는 기존 기업의 상품 품질이 떨어지거나 대체할 수 있는 더 좋은 상품이 있을 때, 더 이상 해당 상품을 구매하지 않고 다른 상품을 구매하는 '이탈 방식'(exit)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해당 기업의 이윤은 하락하게 되고, 개선 성과가 없는 한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기 때문에 기업은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는 기존에 구매하던 상품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는 뜻에서 '항의 방식'(voice)을 택하는 것이다. 고객이 상품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기업의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이들에게 직접 알리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기업은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어 소비자 불만을 해소할 방법을 강구한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고객이 특정 기업의 가격, 품질, 서비스가 불만족스러우면 다른 기업 제품으로 대체하는 이탈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제품이나 서비스와 같은 상품시장이 아닌 조직이나 집단의 경우에 구성원들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까? 좁게는 가족에서부터 넓게는 지역이나 국가와 같은 사회조직에 불만이 있는 경우는 상품시장에서와 같은 이탈 방식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자녀의 교육을 위해, 더 나은 직업을 찾아서, 아니면 국내 정치 돌아가는 꼴을 보기 싫어서 이민을 떠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이탈로 인한 경제적, 심리적 비용이 편익보다 크기 때문에 이탈을 과감하게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이탈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항의 방식이 유일한 대안이 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3년 대구의 20세에서 34세 청년 인구는 42만8천635명으로 2011년 51만6천103명 대비 17%나 줄어들었다. 특히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 45만6천190명 이후로 2021년 44만5천701명, 2022년 43만5천428명으로 매년 2% 이상 가파르게 인구 감소가 발생했다. 이와 함께 급격한 노인 인구의 증가로 대구의 노인 인구 비율은 2024년 현재 이미 20%를 넘겨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자기가 성장한 공동체와 지역을 떠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인간은 고향, 고국에 대한 충성도(loyalty)가 강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이탈하지 않으려고 한다. 충성도는 구성원의 이탈을 막고 항의를 활성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좋은 일자리(decent job)의 유무이다. 좋은 일자리는 기본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디딤돌이다.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지역의 일자리 시장이 개선된다면 그들이 왜 자기 고향을 '이탈'하겠는가?

항의가 일정 수준 성과가 있다면 이탈은 항의가 실패한 후 최후의 선택이 될 것이다. 결국 지금의 이탈 현상은 대구의 기업들과 지방정부가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이다. 지역의 일자리 창출은 정부가 특구를 몇 개 지정하고 몇 개의 기업만 유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이것저것 다 하고 남는 행정력으로는 좋은 일자리 창출은 어림도 없다. 이제는 가장 기초적인 행정서비스만을 남겨 두고 문자 그대로 전사적(全社的) 차원에서 전력(全力)을 다해야 한다.

얼마 전 대구시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계기로 도시 조성 추진 체계를 정비하고 노인 복지 정책을 고도화하여 건강하고 활력 있는 고령친화도시를 만들겠다는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청년이 떠나고 노인만 남은 '건강하고 활력 있는 고령 친화 대구'.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도저히 그려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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