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토국제고 고시엔 우승] '갑작스런' 일본 고시엔 대회 취재 후기

포항 출장 도중 연락받고 바로 일본 오사카행
항공권, 숙소, 고시엔 입장권 구하느라 진땀
도착 이튿날 오전 바로 고시엔 대회 취재 나서

23일 오전 일본 효고현 고시엔역. 오전 일찍부터 많은 이들이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를 보기 위해 고시엔 구장을 찾았다. 채정민 기자
23일 오전 일본 효고현 고시엔역. 오전 일찍부터 많은 이들이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를 보기 위해 고시엔 구장을 찾았다. 채정민 기자

22일 오후 8시 30분 일본 오사카 시내 도톤보리 부근. 예상했던 대로 심하게 덥고 습하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은 지 오래다. 살짝 헤매다 예약한 숙소를 찾고 짐을 풀었다.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하러 밖으로 나섰다. 고시엔(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 결승을 보러 가기 위해선 빨리 자야 했다.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 고시엔 대회를 지켜보기 위해 오전 일찍부터 이곳을 찾은 야구 팬들이 입장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 고시엔 대회를 지켜보기 위해 오전 일찍부터 이곳을 찾은 야구 팬들이 입장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의 기념품 상점. 고시엔 구장 개장 100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채정민 기자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의 기념품 상점. 고시엔 구장 개장 100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채정민 기자

애초 불가능한 시도였다. 시간을 11시간 되돌려 이날 오전 9시 30분. 삼성 라이온즈의 프로야구 경기를 취재하러 포항에 머물고 있었다. 회사에서 전화가 와 고시엔 결승이 언제냐고 묻기에 내일(23일)이라 답했다. 그럼 당장 일본 출장을 가라고 했다. 한국계 고교가 결승에 진출했다 해도 난데없이…? 지금 출발하란다. 옆 나라라곤 해도 버스 타고 옆 동네 가듯 그냥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머리를 급히 굴렸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 이동하며 검색하는 건 무리였다. 짐을 싸며 지인에게 연락, 항공편과 숙소 검색을 부탁했다. 대구공항에서 오후 3시 30분에 오사카로 가는 항공편을 찾았다. 하지만 입력할 여권 번호가 없었다. 집에 있는 여권을 찾아 항공권을 구입하려면 오후 1시가 넘을 듯했다. 그럼 그 비행기는 못 탄다. 그 사이 항공권을 샀냐는 회사 전화가 왔다. 한숨이 나왔다.

23일 오전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으로 출발하기 직전, 일본 한 방송 화면. 고시엔 대회 사상 처음으로 도쿄와 교토 대표가 대결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23일 오전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으로 출발하기 직전, 일본 한 방송 화면. 고시엔 대회 사상 처음으로 도쿄와 교토 대표가 대결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다행히 지인에게 기자의 여권 사본이 있었다. 함께 여행한 적이 있어서다. 항공권과 숙소, 내친 김에 고시엔 입장권까지 예약을 부탁했다. 집에 도착, 바로 짐을 싸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넘었다. 마침 시간 여유가 있다 해서 도움을 준 지인과 동행했다. 가면서 누굴 만나, 뭘 쓸지 고민했다. 22일 밤, 오사카 총영사를 지낸 김석기 의원의 도움으로 진창수 현 총영사와 연락이 닿았다.

23일 오전 7시 30분. 간밤에 검색한 대로 대회가 열리는 고시엔 구장을 찾아 나섰다. 숙소에서 구장까진 40~50분. 전철을 타고 잠시 헤맸다. 하지만 일찍 나선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다. 입장하는 사람들로 고시엔 주변이 북적였다. 고교야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우리에겐 낯선 모습이었다.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 앞. 교토국제고 응원단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채정민 기자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 앞. 교토국제고 응원단이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채정민 기자

찌는 듯이 더웠다. 오전 10시 경기가 시작됐다. 휴대전화를 보니 기온은 32℃. 앉은 자리가 땡볕 속이다. 더위를 피할 길이 없다. 3루 쪽이 교토국제고 응원단이 자리한 곳. 이 더위에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 못지 않게 큰 목소리로 응원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들이 대단해 보였다. 연장 승부 끝에 교토국제고가 웃었다. 그라운드에 울려 퍼지는 한국어 교가가 신선하게 들렸다.

경기 도중 관객을 몇 명 만났다. 일본에 2년 간 머문 적이 있다는 20대 청년 김성현 씨는 "야구 팬이어서 고시엔을 꼭 한 번 찾고 싶었다. 여건이 열악한 교토국제고가 이기다니 대단하다"고 했다. 그의 도움을 빌어 대화를 나눈 마사토시 씨는 고향 교토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은근히 도쿄를 한 수 아래로 보는 듯해 웃음이 나왔다. 그는 "전통을 지키는 옛 수도 교토의 대표가 단순히 국제 도시일 뿐인 현재 수도 도쿄의 대표를 이겨 기분이 좋다"고 했다.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 고시엔 결승에 진출한 교토국제고 재학생들이 응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채정민 기자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 고시엔 결승에 진출한 교토국제고 재학생들이 응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채정민 기자

진 총영사와 경기 내내 연락이 닿지 않아 포기해야 하나 생각할 무렵, 통화가 됐다. 경기장 밖 입구에서 그를 만났다. 지인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인터뷰했다. 한참을 더 기다려 밖으로 나오는 백승환 교토국제고 교장을 붙잡았다. 지인과 함께 인터넷을 검색, 얼굴을 확인해둔 터였다. 바쁘고 힘들다 했지만 사정사정한 끝에 겨우 몇 마디를 얻어 들었다.

오사카의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3시가 훌쩍 넘었다. 머릿속에 정리해둔 글을 재빨리 노트북에 옮겼다. 정신 없이 이틀을 보냈다. 야구를 좋아하다 보니 언젠가 고시엔을 찾을 거라 여기긴 했지만 그 생각이 이렇게 실현될 줄은 몰랐다. 어제에 이어 아침과 점심을 또 걸렀다.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 배를 채울 일이 남았다.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 고시엔 대회에서 우승한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응원한 관객들에게 답례 인사를 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 고시엔 대회에서 우승한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응원한 관객들에게 답례 인사를 하고 있다. 채정민 기자

이왕 일을 하는 김에 현지 반응을 좀 더 듣고 싶었다. 해질 무렵 츠루하시 시장을 찾았다. 오래 전부터 재일교포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2년 전 여행 때도 들른 적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는 어긋났다. 지난 여행 때 만난 적이 있는 상인 역시 고시엔 소식은 들었으나 평소와 같은 분위기라 했다. 이튿날 한 번 더 찾았지만 얘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쉬웠다. 일본 오사카에서 채정민 기자 cwolf@imaeil.com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 고시엔 대회가 교토국제고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직후 진창수 총영사(가운데 붉은 옷), 강종부 교육 영사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지인 제공
23일 일본 효고현 고시엔 구장. 고시엔 대회가 교토국제고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직후 진창수 총영사(가운데 붉은 옷), 강종부 교육 영사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지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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