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장에 놓인 관…그 속에 스스로 누운 작가

'초람 박세호: 삶과 죽음의 고요'
9월 13일까지 달서아트센터

지난 22일 달서아트센터 전시장에서 박세호 작가가 입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지난 22일 달서아트센터 전시장에서 박세호 작가가 입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지난 22일 달서아트센터 전시장에서 박세호 작가가 입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지난 22일 달서아트센터 전시장에서 박세호 작가가 입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전시장의 조명이 꺼지고, 장송곡이 흘러나왔다. 일순간 조용해진 관람객 100여 명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박세호 작가가 성인 남성의 키만한 백지에 붓으로 먹물을 긋기 시작했다. 백묵으로 써놓았던 '목숨 수(壽)' 자의 형태가 점차 드러났다. 붓을 내려놓고 물 속에 담긴 망자의 흔적을 지난 그는 20kg에 달하는 대형 붓을 집어들고, 온 힘을 다해 강렬한 점 하나를 찍었다.

다시 걸음을 옮긴 그는 전시장 바닥에 누웠다. 장례지도사 2명이 눈을 감은 그에게 수의를 입히고 염포로 조심스럽게 몸을 쌌다. 관람객 몇 명이 그의 몸을 함께 들어 관에 넣었다. 닫히는 관 뚜껑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표정에서 복잡함이 스쳤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으로 둘러싸인 전시장에서 펼친 다소 충격적인 입관식 퍼포먼스는 어떤 글자나 그림보다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단순한 종교적 의식을 넘어 고요한 마음으로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에 대해 사색하고 기억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관람객에게 '목숨 수(壽)'에 담긴 나의 철학을 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달서아트센터 전시장에 전시된 박세호 작가의 작품. 이연정 기자
달서아트센터 전시장에 전시된 박세호 작가의 작품. 이연정 기자
박세호 작가가 전시 오픈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박세호 작가가 전시 오픈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22일 달서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초람 박세호: 삶과 죽음의 고요'는 지역 출신의 원로 및 중견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로컬 아티스트 인 달서' 초대전이다.

올해 세 번째 작가로 선정된 박세호 작가는 30여 년간 차별화된 서예 세계를 펼쳐온 현대 서예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통화법을 매개로 자신만의 표현 방법을 탐구하며 창작에 몰두해온 작가의 확장된 조형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번 전시의 주제 단어인 '목숨 수(壽)'에 대해 "청와대, 이화원 등 인수문(仁壽門)에 쓰이는 글이자,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인자수(仁者壽), 즉 어질고 장수한다는 말을 인용한 것"이라며 "단순하게 오래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질 인(仁)과 같이 쓰며 '함께'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 덕을 베풀고 배려함으로써 함께할 수 있는 기억이 오랫동안 남는다는 것은 결국 살아있다는 의미로, 인수(仁壽)는 더 나아가 상생의 뜻으로 확장된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표현 과정에서도 그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 먹과 기름을 혼합해 5겹 또는 7겹의 두꺼운 한지에 조화롭게 겹치게 한다. "한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먹과 기름은 상생과 공존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현존하는 세상에서 산 자가 망자를 기억하며,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전시장에서는 그의 작품 20여 점을 감상할 수 있으며, 입관 퍼포먼스 흔적도 설치미술로 남겨져있다. 전시는 9월 13일까지. 053-584-8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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