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모방과 예술의 관계

유재민 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유재민 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유재민 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모방은 인간의 본능으로서 관찰과 학습의 인지적 과정을 통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사회적 기술의 습득과 창조적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모방을 통해 전승되는 지식과 문화는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기본 조건이 된다. 미를 창조하고 표현하려는 활동의 원천으로서 모방, 즉 미메시스(mimesis)의 개념 또한 예술을 처음 철학적으로 정의하려 했던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함께 논의되기 시작했다.

플라톤은 모든 예술적 창조의 행위를 미메시스의 형태로 규정했으며 본질적이고 완전한 형태인 이데아를 불완전하게 모방한 현실세계를 또다시 모방(복제보다는 재현에 가까운)한 예술은 이데아에서 멀어지고 왜곡된 것으로 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메시스를 예술의 본질로 정의한다. 배움의 원천이자 인간 행동의 바탕이기도 한 모방은 예술적 활동의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미메시스는 현실세계의 모방과 재현으로서 예술의 본질을 정의할 때 사용된다. 예술을 미메시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플라톤은 이데아의 그림자일 뿐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을 정화하고 현실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창조적 재현으로 해석했다.

예술에서 모방은 학습의 도구이자 전통의 계승이라는 명분으로 비교적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다른 작품을 참고하거나 영감을 받는 것은 창작의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일수도 있지만 맥락과 목적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하고 판단해야 한다. 원작의 주제나 스타일을 풍자해 재구성한 패러디, 원작자나 작품에 대한 존경을 담아 원작의 요소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오마주 등 재창조로 인정받는 장르는 모두 단순한 복제가 아닌 원작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점이 반영돼 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는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 1782~1840)는 기존의 기교와 음악적 표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하며 당시 음악계에 큰 충격을 줬고 19세기 비르투오소의 시대를 개척했다. 쇼팽과 더불어 낭만파 피아노 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는 파가니니의 연주를 듣고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공언한 이후 전례 없는 비르투오소로서 성장하게 된다. 파가니니의 원작을 오마주한 작품들 중에서도 리스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S. 141)', 브람스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Op. 35)',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Op. 43)'은 바이올린의 기교를 바탕으로 피아노의 새로운 어법을 개척한 작품으로서 널리 연주된다.

모방과 예술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보완적이다. 모방이 예술의 창작 과정에서 필수 요소로 작용하더라도 창작자는 원작의 권리가 존중 받고 공정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윤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모방은 단순한 복제가 아닌 창조적 재해석을 통한 독창적 결과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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