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무능(無能)도 민주주의의 적(敵)이다

최경철 편집국 부국장 겸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최경철 편집국 부국장 겸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꼭 60년 전인 1964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 낸 서독행을 결심했다. 동맹국 미국은 원조를 갈수록 줄이고 있었고 국민감정상 국교 정상화를 하기 어려운 일본에도 쉽게 손을 벌릴 수 없었던 최악의 시기였다. 대통령 전용기도 없던 그때, 그는 그해 12월 독일 정부가 보내 준 루프트한자 649호기에 올랐다. 전용기가 아닌 터라 다른 승객도 타야 했기에 홍콩, 뉴델리, 로마 등 무려 7개 도시를 거치는 28시간 완행 비행을 거쳐야 했다.

박 대통령은 서독 탄광과 의료 현장으로 각각 파견된 우리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만나 대성통곡을 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하염없이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에르하르트 총리의 조언을 스펀지가 수분을 빨아들이듯 흡수했다. '산이 많은 한국은 고속도로를 깔아야 한다. 그러면 자동차에다 제철산업도 키워진다.' '자동차 연료를 정제해 낼 석유화학산업, 그리고 이 제품을 실어 나를 조선업도 육성하라.' 에르하르트 총리는 민감한 문제까지 꺼냈다. "일본과도 손을 잡으세요."

박 대통령은 독일에서 받아 든 조국 근대화(近代化) 설계도를 안주머니에 고이 넣고 귀국했다. 그리고 그는 속사포처럼 이 설계도를 실천으로 옮겼다. 극한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통해 대일청구권자금을 가져와 포항제철소를 만들었고, 그때 야당이 "정신 나갔다"고 했던 경부고속도로를 닦았다. 제철·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 육성도 설계도대로 착착 진행됐고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은 우리가 독일을 모델로 생각했듯이 최근 우크라이나 교과서에 실릴 만큼 발전국가(發展國家)의 교범이 됐다.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주의 세상은 국가 안전과 국민 풍요가 동시에 보장되는 전제하에서 달성된다. '근대화론'을 주창한 세계의 정치학자들은 경제발전의 수준이 민주주의 체제의 성립을 좌우한다고 단언했다. 단적인 예가 우리보다 훨씬 넓은 국토와 자원, 심지어 석유를 갖고 있는 남미의 나라들이 아직도 저발전과 독재의 늪에서 헤매는 모습이다. 우리는 선행적 경제발전을 통해 선언적이었던 민주주의적 기본권을 책장 속에서 꺼내 실체적 권리로 현실화했다.

최근 대구경북에서 박정희 동상 세우기를 두고 반대 의견이 많다. 박 대통령의 권위주의(權威主義) 체제는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발전국가의 금자탑을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오늘 우리가 박정희를 다시 호명(呼名)하는 이유는 민주화 이후 지속되고 있는 정치적 무능과도 연관돼 있다. 안전과 풍요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무능의 정치세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시혜적으로 용돈을 주듯, 툭하면 전 국민 지원금 명목으로 현금을 살포하는 가부장(家父長) 정치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을 깔아뭉개는 사람들의 대안이 유모(乳母) 정치체제라면 누구라도 거부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뿌리는 시혜에 중독돼 가는 국민은 천사의 가면을 쓴 정치인들에게 결국 자유를 박탈당할 것이다. 정치적 후견(後見)주의가 공포스러운 이유다. 현실정치에서 목격되는 무능한 민주주의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박정희의 동상을 세우고 기념관·도서관도 만들어 그가 만들어 놓은 궤적을 찾아야 한다. 동료시민들은 이 학습을 통해 오늘날 대중추수(大衆追隨)주의로 중무장해 있는 정치 세력들의 무능을 검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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