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소연 기자의 한페이지] '자동차에 진심'인 대학생 수집가 4인… “자동차 모형만 700대가 넘어요”

대학생 자동차 수집가 권도형·강민재·이희상·석상우 씨
지난 9일부터 나흘간 'Detail : 모형으로 만나는 자동차 디자인'전 열어
"아름다운 자동차 세계, 일반인들에게 공유하고 싶어"
4인이 직접 기획부터 홍보까지…"박물관 만드는 게 꿈"

지난 15일 대학생 수집가인 강민재·이희상·권도형·석상우 씨를 매일신문사에서 만났다. 한소연 기자
지난 15일 대학생 수집가인 강민재·이희상·권도형·석상우 씨를 매일신문사에서 만났다. 한소연 기자

1950년대에 제작된 '메르세데스-벤츠 300 SLR 올렌하우트 쿠페'가 지금 눈앞에 있다. 경매에서 1천800억에 팔렸다는 희귀한 클래식 차를 실제로 보다니. 은색의 말끔한 자태가 무척 멋스러웠다. 차 문도 위로 열리는 '걸윙 (Gull wing) 도어'다. 빨간 시트의 가죽 질감도 부드럽다. 주유구도, 보닛도 문제없이 열린다. 사실 진짜 차는 아니고, 실제 자동차를 1/18로 축소한 다이캐스트 자동차다.

다이캐스트 자동차란 실제 차량의 디자인과 세부 디테일을 차량 도면을 스캔해서 제작된 정밀 모형이다. 어린이용 장난감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다이캐스트는 오늘날 '키덜트'들의 대표 수집품이 됐다. 현재 전 세계에 약 2억 명의 수집 인구를 자랑한다.

대구에도 있다.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권도형(24·영남대 전자공학과)·강민재(23·영남대 산업디자인학과)·이희상(24·Arizona State University)·석상우(24·University Of Michigan) 등 대학생으로 구성된 자동차 모형 수집가들이 'Detail : 모형으로 만나는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었다. 전시를 연 대학생 수집가 4인을 만나봤다.

메르세데스-벤츠 300 SLR 올렌하우트 쿠페. 권도형 씨 제공
메르세데스-벤츠 300 SLR 올렌하우트 쿠페. 권도형 씨 제공

-다이캐스트 모형 수집, 조금 생소하다. 계기가 있나.

강민재(이하 강) "사촌 형 집에 가면 장난감 자동차가 많았다. 서너 살 때쯤이었는데 장난감이 많은 사촌형 집에 가는 것이 너무 좋았다. 다이캐스트처럼 정밀하게 만들어진 자동차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수집했다.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었다.

이희상(이하 이) "나를 포함해 모두 대형마트 장난감 코너에 파는 미니카 같은 것들에서부터 자동차에 대한 흥미를 느꼈을 거다. 내 경우 부모님이 운전하는 실제 자동차를 타면서는 '나도 차를 끌어보고 싶다'는 로망도 싹 텄다. 어느 날 부모님이 운전하는 차와 같은, 마트 장난감보다 더 진짜 같은 장난감을 알게 됐고 그게 로망을 충족시켜 줬다."

권도형(이하 권) "혼자 수집하던 중 미술학원을 다니다가 친해진 상우를 다이캐스트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민재와 희상은 다이캐스트 모형 수집가들이 모인 포털사이트 카페 활동을 하다가 같은 대구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친해졌다. 중학생 때부터 대구스타디움에서 만나서 서로 자기 차 자랑하고 야외촬영 하면서 놀았다."

자동차 컬러에 따른 디자인 변화를 한 눈에 보기 좋게 전시했다.
자동차 컬러에 따른 디자인 변화를 한 눈에 보기 좋게 전시했다.

-각자 소유한 자동차 모형은 몇 대 정도인가.

석상우(이하 석) "나와 도형은 각각 300대 정도 가지고 있다. 민재와 희상도 그 정도로 있었는데 60대 정도만 남기고 전부 팔았다. 민재는 그것을 팔아서 진짜 자동차를 구매했다. 모델마다 다르지만 많게는 10만원대, 중고로는 반값 정도의 가격대로 사고 팔 수 있다."

-양이 어마어마하다. 초등학생들이 돈이 어딨다고 그렇게 모았나.

"학창시절에는 있는 용돈, 없는 용돈 싹싹 긁어모아서 샀다. 새 제품을 사는 것은 용돈으로 충당하기에 부담스러워서 하자가 있는 중고품을 싸게 사서 직접 수리를 했다. 도색도 하고 납땜도 하는 식이다. 사고 싶은 모델이 생기면 가지고 있는 것을 팔아 돈을 마련해서 구매하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알바를 했다."

"실제 자동차를 다 가질 수 없으니 정밀 모형으로라도 수집하는 것 같다. 각자 다 드림카가 있지 않나. 드림카를 모형으로 두면 '공부 열심히 하고 돈 많이 벌어서 사야지'하는 목표도 생긴다. 또 지금은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이라 디자인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전시도 새로운 수집을 위한 자금 마련의 역할을 하는 줄 알았더니 전부 무료더라.

"일반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전시이기도 하고 일단 많은 사람들이 다이캐스트로 자동차의 아름다움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무료로 진행했다. 홍보 팜플렛 같은 것도 우리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디자인 전공자라 포토샵을 사용할 수 있다. 홍보 보도자료도 작성했다. 장소 대관이 가장 문제였는데 다행히 대구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에서 장소를 무료로 제공해 주셨다.

한국 프리미엄 세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한국 대표 자동차를 전시했다.
한국 프리미엄 세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한국 대표 자동차를 전시했다.

-그렇게 품을 들여 전시를 열게 된 이유는?

"네 명이 지난 10여 년간 수집한 자동차 모형만 700대가 넘는다. 시대별로, 브랜드별로 지금까지 출시된 자동차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었다. 다이캐스트는 실제 자동차를 축소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디테일이 실제 차량과 거의 똑같다. 보닛도 열리고 주유구도 열린다. 시트까지 실제 차량에 쓰인 가죽으로 덮어두는 식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클래식 카들도 보고, 현재도 도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차도 실제로 만져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직접 전시를 기획하고 열게 됐다."

-이번 전시가 두 번째라고 들었다.

"대구 동부도서관에서 열었던 지난 전시의 경우 테마를 따로 정하지 않고 그냥 자동차를 늘여놓기만 했다. 그랬더니 그저 신기해만 하면서 쓱 보고 나가시더라. 이번 전시는 자동차 디자인으로 그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테마를 정하고 그 테마에 적합한 100여 대의 자동차를 선정해 전시했다."

"메인 테마는 디자인 변천사다. 폭스바겐 골프와 메르세데스 벤츠 SL의 전 세대 모델을 차례대로 전시해 한 눈에 디자인 변화를 볼 수 있도록 했다. 골프 및 SL과 관련한 브로슈어와 도서 등 자동차 관련 책자도 볼 수 있게 했고 체험 공간도 만들어놨다. 그랬더니 아이와 함께 가족 단위로 방문하는 관람객이 늘었다. 전시회 기간에 감사하게도 1천300명 정도의 관람객이 찾았다."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열린 'Detail : 모형으로 만나는 자동차 디자인' 전에 1천300여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폭스바겐의 골프의 시대별 변천사를 전시했다. 브로슈어 등을 둬 자동차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폭스바겐의 골프의 시대별 변천사를 전시했다. 브로슈어 등을 둬 자동차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전시의 A부터 Z까지 전부 4명이 직접 기획하고 열었다고 들었다.

"전시 기간은 나흘인데 준비 기간은 한 달이었다. 지난 전시를 통째로 녹화한 영상을 서로 분석하면서 관람객을 끌어올 방법을 강구하느라 준비 기간이 오래 걸렸다. 최대한 많은 자동차를 보여주기 위해 양으로 승부했던 지난 전시와 달리 이번 전시는 수집 마니아층도 만족시키면서도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절충안을 고심했다.

"주 관람층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으로 설정했다. 직접 설명도 진행했는데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멋진 차를 투표하도록 하는 등 참여형 이벤트를 만들었다. 보기만 하는 전시가 아니라 직접 만져보고 소통할 수 있도록 전시를 만드는 것이 어린이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수집가들은 보통 모형을 만지지 못하게 하는데 우리는 만져볼 수 있게 했다. 아이들이 만지다가 고장 나면 수리하면 되니까 괜찮았다."

"아이들은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전시가 많이 없다. 어릴 때는 그런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유치원 때 대백프라자에서 했던 작은 전시회가 기억에 남았다. 그저 로망에 그치기만 했던 자동차를 모형으로 마주한 어린 시절의 경험이 현재의 우리를 만든 것이다. 자동차 디자이너, 자동차 설계사 등 자신의 진로를 정해 공부도 하고 유학도 가고, 이렇게 전시회를 개최하는 시작이 됐다. 우리의 전시가 미래의 자동차 산업을 이끌 사람들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책임감도 있다.

"아이들이 자동차에 흥미를 갖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부모님들도 만족해했다. 무엇보다 우리가 대학생이다 보니까 우리에게 진로 상담을 하시더라. 부모님 관람객들은 그런 부문에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을 거다."

전시회를 주최한 강민재, 석상우 ,권도형, 이희상 학생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시회를 주최한 강민재, 석상우 ,권도형, 이희상 학생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기획하고 있는 다음 전시도 있나.

"오는 11월에 프라모델 전시회가 있는데 그 주최 측에서 우리 자동차 모형을 함께 전시할 수 있도록 제안을 해왔다. 그 전시는 정기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는 다른 지역 동호회 사람들이랑 협업해서 더 큰 규모로 전시해 보고 싶다. 재단이나 업체에 후원을 받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아주 나중에는 갤러리나 박물관을 차리고 싶다."

-전시도 전시이지만 각자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도 궁금하다.

"자동차 회사에 취업해서 설계사가 되고 싶다. 전공도 전자공학과인데 자동차 설계사가 되고 싶어서 진학했다. 책으로 기초 학문만 배운 상태인데 실무는 어떨지 벌써 설렌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하고 싶었는데 미술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경영학과를 전공하고 있는데 전공을 살려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 전시도 학교에서 배운 홍보 마케팅을 직접 응용해 볼 수 있어 재밌었다."

"늘 자동차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창작하는 활동이 재밌어서 산업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적성에 맞더라.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막연하게는 자동차 디자이너이지만 그중에서도 자동차 색상이나 소재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전공은 시각디자인 위주로 배우고 있지만 대학원에 진학해서 자동차 디자인 쪽으로 집중적으로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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