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식(61) ㈜국민트랜스 대표는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의 결과물이었다. 경북 청도군 이서면이 고향인 그는 고교 졸업 후 돈을 벌겠다는 생각 하나로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역 앞 여인숙에 1박 500원짜리 방을 잡고 인력 업체 소개로 이삿짐 나르는 일을 한 게 인연이 됐다. 이후 10년 간 이삿일을 하며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밑천 삼아 서른 살인 1993년 국민트랜스를 설립했다. 이후 30여년 만에 국민트랜스는 관공서, 기업, 도서관, 병원 이전 등을 전문으로 하는 국내 대표 이사 및 물류 운송 전문 업체로 성장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단행한 '용산 이전'도 국민트랜스가 맡아 실력을 입증했다.
- ㈜국민트랜스 창업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이서고등학교를 1980년에 졸업하고, 돈을 벌려면 서울로 가야겠다 싶어서 친구 몇 명과 무작정 상경했습니다. 서울역 앞 여인숙에 짐을 풀어놓고 한 방에서 7,8명과 함께 지냈어요. 그 중에 영화 엑스트라, 식당 종업원 등 별의별 사람이 다 있어요. 그러다 인력 시장에서 이삿짐 아르바이트를 한번 나간 게 시작이 됐습니다. 제가 체격도 크고 힘이 장사니까 계속 일하러 나오라고 한 거죠. 그 회사가 지금의 대한통운이예요. 이삿짐 용역회사 직원으로 취직하고는 대형운전면허증을 땄고 이삿짐 차량 운전기사로 승격이 됐죠. 이후 중동으로 돈을 벌러 나갔다가 귀국해서 그동안 모은 돈을 털어 업체를 차렸습니다. 회사라기 보단, 큰 업체에서 이삿일을 주면 하청 받아 하는 일종의 용역 도급이었습니다. 그렇게 10년 이상 이사짐과 화물 운송을 하며 기술을 습득하고 업계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국 대리점 사장단을 규합해 1993년 국민트랜스를 설립했습니다. 90년대 들면서 이사업계에는 호황이 왔습니다. 분당, 일산 등 서울 주변 신도시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며 이사 문화도 포장 이사 시대로 바뀌었죠. 회사 설립과 동시에 포장이사 체계를 갖추고 포장 프로세스를 정립했습니다. 고가사다리차 같은 장비를 도입하고, 차별화된 포장 이사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국내 업계에선 거의 최초였습니다. 포장 전문 기술과 전문 장비를 갖춘 덕분에 기업, 관공서 이전 같은 특수·대형이사 분야로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 ㈜국민트랜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국민트랜스는 가정 이사는 물론 관공서, 기업 이전 서비스와 고객 맞춤형 물류, 택배 및 운송 물류 서비스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업 분야는 ▷이전·이사용역(관공서, 기업, 도서관, 학교, 병원, 언론사 등) ▷물류 운송(일반·특수·중량물 화물) ▷보관사업 ▷특수장비차(사다리차, 스카이차 작업) ▷플랫폼사업(모바일을 활용한 이전, 이사, 고소작업차 중개) 등 5개 입니다.
특히 저희 업체는 1993년 설립 때부터 관공서 및 기업 이전 등 특수이사를 도맡아하며 타 업체와 차별화를 이뤘습니다. 국방부 청사 사무실 등 이사 용역, 대통령경호처 사무실 이전 용역, 국회부산도서관 자료 이관 및 재배열, 종로구청 청사 사무집기 및 비품 이사 용역,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 이전 이사 용역, 우리은행 우리금융상암센터 총무팀 이전 용역, 중앙대 도서관 보존 서고 압축 이전 용역, 서울아산병원 의료기기 및 사무집기 이전 용역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국민트랜스는 업계 최초로 고소작업 차량 온라인 관리 시스템을 개발·도입하고, 전국에 고소작업 차량 체인망을 구축했습니다. LG, 위니아, 전자랜드, 하이마트 등 대기업 장기 계약을 유치했습니다. 현재 전국 110개 대리점과 하루 880대 고소작업 차량을 동원할 수 있으며, 연평균 43만 건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국내 최대 고소작업 차량 서비스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관공서, 기업, 병원 등 이전·이사는 어떤 특수성이 있나요?
▶우선 최근에는 용산 대통령실 이전 작업이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죠. 대통령 취임일에 맞추느라 단기간 내 빠르게 진행해야 했습니다. 기존 사무실을 비우고, 인테리어를 하고, 바로 사무집기를 채워넣어야 했기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당시 코로나19가 절정인 시기여서 100여명의 작업인부들이 마스크를 쓴 채 일을 하느라 작업 여건이 더욱 힘들었습니다.
구미 전자업체 공장 생산라인을 옮긴 일도 좀 특수한 경우였죠. 반도체 장비를 해체해서 포장하고, 이걸 차에 실어서 이동시킨 후에 다시 설치하는 작업은 단순 이사의 개념을 넘어서는 거죠. 이런 공장 특수이사는 정밀 기계를 포함하기 때문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병원 경우도 고가의 의료기기나 특수 장비 등이 많아 작업이 상당히 민감합니다. 예를 들어 자연대학 경우도 실험기기 하나가 의료기기 못지 않게 고가이고요.
또 생각나는게 질병관리본부 이사 때는 전 세계 모기 표본을 옮겨야 했습니다. 500여 마리 모기 표본이 하나하나 바늘로 판에 꽂혀 있는데, 조금만 큰 충격이 가해지면 바스라져 가루가 되버릴 우려가 있었어요. 무진동 화물차량으로 거의 온전하게 옮겼던 기억이 나네요.
국립도서관, 대통령기록물실, 법원 이전 경우도 오래된 서적이나 기록물을 옮길 때 자칫 파손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런 물건들을 손상없이 잘 옮겨놓으면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지요.
이런 작업의 특수성 때문에 한번 신뢰를 쌓으면 소개를 통해 또다시 의뢰를 받는 일이 많습니다. 제가 한 관공서 이전 현장에 나가서 직접 작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잘해 놓으면, 이게 일종의 개런티가 되는 거죠. 기재부 이사를 하고 나면, 그 다음에 행안부에서 전화가 오고, 과기부에서 전화가 오는 식이죠. 그렇게 고객들의 신뢰를 쌓아나갈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홍보가 된 덕분에 현재의 위치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경북씨름협회장도 맡고 계시고, 고향인 청도에 애정이 많으십니다.
▶고교 때 학교 대표로 국민체전에 출전해 나간 경험이 있어서 체육 활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경북씨름협회장을 4년 정도 맡으면서 민속씨름 저변 확대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씨름 체육이 갈수록 선수층이 엷어지면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앞으로도 씨름 발전을 위해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 사업에만 매달린 때문인지 고향에 대한 애정이 큽니다. 모교 동창회를 비롯해 재경 출향인 모임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지역사회 결속과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재경 대구경북 시도민회 상임부회장, 청도 향우회 수석부회장, 이서중고 총동창회 운영위원장을 맡은 것도 그런 일환입니다.
저는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하려고 했습니다. 때로는 무모할 때도 있었고,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청년 후배들에게도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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