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만학도 찬가(晩學徒 讚歌)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자 지금부터 받아쓰기 시간이에요/ 선생님의 말씀에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뛴다/ 1번 밥을 짓다/ 2번 개가 짖다/ 3번 안개가 짙다/ 아이고 선생님요 뭐가 다 짓니껴… 한 글자로 다 같이 쓰면 안되니껴."

안동 마리스타학교 권남조 학생이 '짓다 짖다 짙다'라는 시화로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대통령상이 없으니 1등 상(賞)이다. 전국에서 1만8천937명이 참여했다. 백분위로 환산하자면 상위 0.005%다. 학교 다닐 때도 받아 보지 못한, 아니 학교를 다니지 못해 받을 수 없었던 상이다. 40대 딸의 손을 잡고 2022년 한글을 배우겠다며 처음 마리스타학교에 온 그는 올해 예순아홉이다.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 참여한 이들이 내놓은 시화는 수기(手記) 그대로다. 글자체를 정제해 출간하는 시집과 다르다. 삐뚤빼뚤하다. 진정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살아온 세월이 손에서 펜으로 전해져 시화에 남는다. 서러웠던 지난 시간이 보는 이의 눈에 울컥 들어온다. 쉬운 시어임에도 단박에 안다. 눈물이 맺히나 싶더니 뚝 떨어지고 이내 엉엉 운다. '자동 눈물 버튼'이다.

기자의 사심(私心)으로는 매일신문이 매년 7월 여는 시니어문학상에 시화전 부문도 포함하자고 우기고 싶다. 예술 작품을 보고 들으며 공감한다는 건 그 감정을 알 만큼 살았다는 뜻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작품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는 능력치가 내게 생긴 게 아니다. 잘 표현하는 재주가 그들에게 있는 걸 이제야 안다. 노인을 살아 있는 도서관이라지 않는가. 세네갈에서는 노인의 죽음을 예의 바르게 표현할 때 "그 사람의 도서관이 불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비문해(非文解) 성인 비율은 4% 정도라고 한다. 특히 70대의 7명 중 1명이 이에 해당된다. 말로만 자신의 생각과 심정을 표현하던 이들이 70년 만에 글로 표현한 느낌이 어땠을지 상상한다. 분명 새로운 세상이 열렸으리라. 늦깎이의 그림, 음악 도전도 이와 같을 것이다.

욕심을 더 내면 만학도(晩學徒) 전형으로 대학도 갈 수 있는 시대다. 살아온 날이 남은 날보다 많다는 그들이지만 팔팔한 88학번보다, 산소 같은 02학번보다 더 젊어진 그들을 본다. 저물어 가는 생(生)을 정리하는 때가 아니다. 생의 목표가 하나씩 더 생기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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