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전공의 이탈에 간호사 파업까지, 정부 대책은 뭔가

간호사, 의료기사 등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의료 정상화, 처우(處遇) 개선과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29일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했다.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增員)에 반발해 환자 곁을 떠난 지 6개월이 지난 와중에 보건의료 노동자마저 파업을 하면 의료 공백은 더 심각해진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응은 안이(安易)하다. 정부는 파업과 관련, "응급·중증 등 필수 진료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계획"이라며 원론 수준의 입장만 밝혔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최근 61개 병원 사업장을 대상으로 쟁의(爭議)행위 찬반 투표를 한 결과, 찬성률 91%로 총파업을 가결했다. 보건노조의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전국 61개 의료기관의 간호사, 의료기사, 요양보호사 등 2만2천100여 명이 29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다. 전공의 이탈 이후 의료 공백을 메우고 있는 간호사 등이 파업을 하면, 의료 현장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 업무 인력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나, 중환자의 수술과 입원 차질(蹉跌)은 불을 보듯 뻔하다.

파업을 예고한 61개 병원에는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급) 8곳과 공공의료원 26곳이 포함돼 있고,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은 파업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지역에서 한두 군데 병원이 마비(痲痹)되면,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몰리면서 연쇄적인 진료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 보건노조는 지난해 7월에도 이틀간 총파업을 벌여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게다가 코로나19 환자가 증가하고 있는 데다, 응급환자가 몰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어 국민들의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다.

의료 현장은 전공의 이탈 장기화로 붕괴(崩壞) 직전이다. 교수, 전임의, 간호사 등 병원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은 탈진 상태다. 견디다 못한 교수와 전임의들의 사직도 잇따르고 있다. 악순환이다. 환자들은 수술과 입원 지연으로 마음까지 병들고 있다. 지방에서 시작된 응급실 대란은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확산할 조짐이다. 지난 9일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 정비 차량 충돌 사고 때 다친 작업자가 응급실 전문의(專門醫) 부재로 16시간 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轉轉)했다고 한다. 15일 충북에선 임신부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119구급차 안에서 출산하기도 했다. 이처럼 '응급실 뺑뺑이'를 겪은 환자는 올 상반기에만 1천 명을 웃돈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건노조 파업 예고를 비롯한 일련(一連)의 의료 사태에 대한 정부의 처방은 무능하다. 정부가 제시한 정책은 장기적이고 모호(模糊)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파업을 자제해 달라고 촉구할 뿐, 보건노조의 요구안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건의료인 처우 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등 제도 개선에 노력할 것"이란 두루뭉술한 답변이 전부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 붕괴 우려에 대해서도 "일시적 진료 제한일 뿐 정상화 과정에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경증 환자가 대형 병원 응급실을 이용할 때 진료비 본인 부담을 올리는 대책을 내놨지만, 이 역시 미봉책(彌縫策)이다. 정부가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되레 악화시킨다는 비판도 나온다. 진료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러니 어떻게 정부를 믿겠는가.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 신뢰를 잃으면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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