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에 불과한, 선조의 서손(庶孫)이자 인조의 동생인, 능창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가 있다는 의심이 인 건 1615년(광해군 7년)이었다. 역모 혐의의 증거는 점(占)이었다.
"윤길이 명운(命運)을 잘 점치는데 일찍이 능창군의 녹명(祿命)은 40년간 치평(治平)의 군주가 될 명운이라고 하였다. (중략) 왕은 평소 능창군의 모습이 범상치 않다는 말을 들어온 데다 능창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사저에 왕기(王氣)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으로 항상 의심해 왔다."(광해군일기)
고변은 여러 죽음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생때같은 아들이 죽자 정원군도 몇 년 뒤 마흔도 안 돼 죽는다. 동생이 역모로, 아버지가 충격으로 죽자 능양군(인조)이 움직인 건 인지상정. 팩트가 부족한 '킹리적 갓심'과 같은 점괘를 근거로 한 의심과 질시는 반정으로 귀결됐다.
1980년대는 반미 구호가 넘쳐 났다. 분단도 미국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이 남한 단독정부를 세워 분단을 고착화했다는 것인데 스탈린의 비밀 지령문이 나오면서 헛소리가 됐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993년 2월 '스탈린이 1945년 9월 20일 소련이 점령한 북한 지역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할 것을 지령했다'라는 지령문을 번역해 보도했다.
맥아더가 미국 중심 반공 질서 구축을 목적으로 이승만을 앞세웠다는 주장도 비슷하다. 86세대의 '이념 교재'로 불린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에 실린 내용이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 실력자이자 GRU(소련군 정찰총국) 스파이였던 엘저 히스의 공작(工作)이 1995년 7월 미국 정부가 공개한 베노나(Venona) 문서에서 드러나며 전환점을 맞는다. 국가안보국(NSA)이 1942~1946년 소련의 전문(電文)을 감청, 해독(解讀)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히스는 '매카시즘의 희생자' '냉전시대의 희생양'이라고 반박했다. 소련 간첩이었다가 전향해 히스가 스파이였음을 폭로한 휘태커 체임버스는 "그야말로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공산주의자임을 부정해 세상을 속이는 게 상투적인 수법이라는 것이다.
2022년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의 발단이 된 첼리스트가 "의혹 자체가 허구"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친민주당 계열 유튜버가 의혹을 보도하고, 김의겸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언급한 사건이다. 황당한 것은 관심법(觀心法)도 쓴다는 점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그분들(윤석열, 한동훈)을 직접 본 적이 없다"고 하니 '외압이나 협박을 받아 첼리스트가 말을 바꾼 것'이라 맞섰다.
과학적 증거도 가볍게 무시한다. 후쿠시마 오염수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에 "1년밖에 안 됐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4~5년은 있어야 알 수 있다고 한다. 2016년 사드 미사일 배치로 성주에서 생산되는 참외가 전자파 범벅이 될 것이라던 의혹은 10년쯤 되니 잠잠하다.
현역 국회의원이 근래에 내놓는 '계엄령 선포설'도 기가 막힌다. 군과 경찰 등 공권력 실세를 충암고 출신으로 채워 계엄령 선포를 용이하게 만들었다고 꿰맞춘다. 이태원 참사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결코 바꾸지 않은 이유라고 한다. 여인형 방첩사령관도 충암고 출신임을 덧붙인다. 헌법에 정해진 계엄령 요건이 있는데 이래도 되는 건지 의아하다.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며 사는 게 '깨어 있는 시민(깨시민)'의 덕목이라면 '의심병 환자'급은 돼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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