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상경몽(上京夢)

이수현 세종본부 기자

이수현 세종본부 기자
이수현 세종본부 기자

정부세종청사 고위 공무원과 첫 만남에서는 흔히 '호구조사'를 거친다. 거처가 세종인지 서울인지 묻는 조사다. 이들의 절반은 정부세종청사 부근에 산다고 대답한다. 다만 두 집 살림인 경우가 적지 않다. 청사가 세종으로 막 이전했던 시절, 교육 환경이 변변치 못했다 보니 서울을 왕래하는 '주말부부'로 지낸다는 얘기다. 생이별에 서울 쪽으로 머리를 대고 잠들며 상경하는 꿈을 꾼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공무원뿐 아니라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상경몽'(上京夢)을 꾼다. 한국부동산원의 월별 매입자 거주지별 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거래된 서울 아파트 중 20.5%가량은 서울에 거주하지 않는 이들이 사들였다. 집값이 내려가지 않는, 안전한 자산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 심리가 '상경 투자'를 부추긴 것이다. 올해 2~6월 서울 전체 아파트 중 외지인 거래 가구가 20%를 넘어설 정도였다. 특히 '마용성'(마포·용산·성남) 등 도심 아파트 지구와 강남 3구 등 핵심지에 외지인 거래가 쏠렸다.

지방은 불황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장 대구만 해도 수도권에 올라가려는 사람만 있고 내려오려는 사람은 없다시피 하다. 지난 6월 거래된 대구 아파트는 서울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이었고, 서울에 거주지를 둔 매입자가 대구에서 아파트를 사들인 비율은 1.2%였다. 한때 집값 상승률 1위로 주목받던 세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올해 6월 기준 외지인이 세종 아파트를 사들인 건수는 작년과 비교해 24.7%가량 줄었고, 전월인 5월과 비교해도 지난해보다 27.4%나 감소했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 양극화가 점점 선명해진다는 사실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는 반면 지방은 기나긴 침체기를 견디고 있다. 서울과 지방의 아파트값 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진다. 서울의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는 동안 지방의 상승세는 부진한 탓이다. 서울과 지방의 집값 격차는 2021년 이후 계속 10억원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전국 아파트 거래에서 수도권 아파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0%를 넘어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 국민의 시선이 수도권에 쏠린다. 생활은 지방에서 하더라도 서울 집을 사들이는 부푼 꿈과 희망을 품으며 '상경몽'을 꾼다. "지방에선 전세로 살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해서 서울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서울 아파트가 안전 자산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어서다. 전국적으로 집값이 치솟았던 '부동산 급등기'인 지난 2021년과 달리 서울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여기에 정부가 '8·8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며 쏟아낸 공급 물량까지 더해지면 수도권과 지방 간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이번 대책이 상경 투자 수요에 불을 지필 것이란 우려다.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에 편중된 대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서울 아파트 공급 증가에 대한 기대감만 높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가 수도권에 눈을 쏠리게 하는 대책을 반복해 내놓는 동안 비수도권은 수차례 방치됐다. '똘똘한 한 채'를 찾아 서울 아파트를 노리는 꿈이 뚜렷해질수록 지방 소멸은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당장 대구만 해도 미분양 적체 등의 여파로 인한 침체에 허덕이고 있다. 악순환이다. 지방의 현실을 보는 정부의 눈이 절실하다. 전국 시도 중 서울·인천·경기에만 꿈과 희망이 몰린다면 나머지 도시는 불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 뻔하다. 수도권에 기울어진 부동산 대책은 명확한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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