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전기차 포비아, 함께 머리 맞대야

강병우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
강병우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

인천 청라아파트 지하 주차장, 충남 금산 공영 주차타워 등에서 전기차 화재로 큰 피해가 발생,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급기야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전기차에 대한 막연하고 근거 없는 두려움이나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는 전기차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전기차 화재 관련 부처 긴급회의를 개최하고 전기차 배터리 인증제, 과충전 제한 등 속도감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전기차 제조사들이 그간 비공개해 왔던 배터리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개토록 권고하고 향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서울시는 전기차 화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과도한 충전을 제한하고 공동주택 400곳에 대한 불시 기동 단속 및 화재 안전 조사를 추진한다. 전북도는 전기차 충전 시설에 대한 현장 점검과 지하 충전 구역 화재 안전 시설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이차전지 산업을 핵심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포항시 역시 '전기차 화재 안전대책 TF'를 구성하고 전기차 충전 시설에 대한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하는 한편 관련 조례 제정 등 종합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처럼 전기차 화재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 확산으로 각 기관이 화재 원인에 대한 분석과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통계를 살펴보면 전기차 화재 빈도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지난 한 해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72건으로 1만 대당 화재 발생 비율이 1.3대인 반면 내연기관 차량은 지난해 말 기준 1.9대로 오히려 전기차보다 화재 발생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차량 10만 대당 화재 발생 건수는 하이브리드 3천474회, 내연기관차 1천530회, 전기차 25회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통계 수치가 화재 발생 위험성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전기차가 화재에 더 취약할 것 같다'는 걱정은 과도한 우려임을 알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탄소중립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지난 몇 년간 급성장세를 거듭하던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대중화 직전 수요 둔화를 일컫는 캐즘에 이어 화재 사고로 인한 포비아 현상까지 덮치면서 침체의 늪에 빠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급속히 퍼지고 있는 전기차 포비아를 막지 못할 경우 탄소중립을 선도할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거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전기차 포비아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학교, 연구기관 등 산·학·연·관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구와 생산 단계에서부터 안전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화재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단계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정부는 주차 공간의 지상화, 지하 주차장 격벽 방화벽 설치, 소화 시설 지원 등 전기차 화재 발생 시 효과적 대응을 위한 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하고, 기업과 연구기관에서는 전기차 화재 원인 규명 및 철저한 안전성 관리와 함께 화재 위험성은 낮고 에너지 밀도는 높은 전고체 전지와 같은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또한 원천적으로 안전성이 확보된 소재와 전지 구조를 개발하기 위한 기업과 학교·연구기관의 연구개발을 정부는 적극 지원해야 한다. 지금은 반도체 이후 국가 주력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산·학·연·관이 함께 힘을 모아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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