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문환의 세계사] 올림픽 월계관의 영광? 아폴론의 성범죄 결과물

피티아 제전 우승자에 수여했던 월계관
올림픽 문학 분야 경선자에게 준 이유?
학문·예술 수호신 아폴론 사랑서 비롯
당시 황제·문학인·일반인 사이에 유행

델포이 극장과 아폴론 신전터. 극장 아래로 초석과 기둥만 보이는 직사각형 건물터가 아폴론 신전이다.
델포이 극장과 아폴론 신전터. 극장 아래로 초석과 기둥만 보이는 직사각형 건물터가 아폴론 신전이다.

제 33회 파리 현대 올림픽이 지난 11일 막을 내렸다. 17일간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선수들의 최선을 다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우승한 선수들에게 금메달이 수여되지만, 고대 올림픽에서는 머리에 나뭇잎관을 씌워줬다. 월계관(Laurel Wreath)일까, 올리브관(Olive Wreath)일까? 그 유래를 찾아 신화여행을 떠난다.

◆델포이 아폴론 신전 여신관 피티아 주도 경기

한국인도 많이 찾는 그리스 중부지방 파르나소스산. 고대 그리스인들은 파르나소스산을 지구의 중심으로 여겼다. 중국인들은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해서 중화(中華)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동양 문화의 원류가 중국이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하다. 서양에서 중국같은 나라는 그리스다. 그리스인들도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여겼고, 땅으로 치면 파르나소스산을 지목했다. 현지 지명으로는 델포이다.

델포이 스타디온. 피티아 제전이 펼쳐지던 장소. 월계관을 최초로 수여한 장소.
델포이 스타디온. 피티아 제전이 펼쳐지던 장소. 월계관을 최초로 수여한 장소.

사람들은 델포이 아폴론 신전이 지구 중심이어서 영험한 기운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폴론 신전을 지키는 여신관 피티아는 특별한 예지력을 갖는다고 봤다. 때만 되면 국가나 개인의 운명을 알기 위해 그리스인들이 델포이 아폴론 신전 피티아를 찾은 이유다. 지금 델포이에 가면 반원형 그리스 극장, 스타디움과 함께 아폴론 신전터가 남았다.

B.C590년 피티아가 여기에서 제전을 주재한다. 시낭송대회, 체육경기를 펼쳤다. 이를 피티아 제전이라고 한다. B.C 776년 시작된 올림피아의 올림픽에 이어 그리스인들이 신성시하던 제전이다.

◆피티아 경기 월계관이 올림픽으로 전파

올림픽에서 선수가 우승하면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앞 올리브 나무에서 가지를 잘라 관을 만들어 씌워줬다. 올림픽의 상징은 올리브관이다. 물론 이것 외에 야자나무 가지, 니케 여신이 수여하는 승리의 머리띠 등도 우승을 상징하는 대유적 장치다. 델포이 피티아 경기는 달랐다.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수여했다.

피티아가 모시는 신은 아폴론이고, 아폴론을 상징하는 성수(聖樹)가 월계수이기 때문이다. 피티아가 씌워주던 월계관 문화가 올릭픽에도 영향을 미쳤다. 체육경기가 아닌 시낭송 분야 즉 문학분야 경선 우승자에게 줬다. 아폴론이 문학을 포함한 학문과 예술의 수호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예 수호신 아폴론과 월계관은 무슨 관련이 있길래 피티아 경기와 올림픽 문학경기에서 월계관을 수여한 것일까?

월계관을 쓴 아폴론이 다프네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 다프네가 급히 도망치다 아버지 강의 신 라돈의 도움으로 월계수로 변하는 모습. 로마시대 모자이크. 튀니지 엘젬 박물관
월계관을 쓴 아폴론이 다프네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 다프네가 급히 도망치다 아버지 강의 신 라돈의 도움으로 월계수로 변하는 모습. 로마시대 모자이크. 튀니지 엘젬 박물관

◆아폴론, 요정 다프네 사랑

영화 <글라디에이터(Gladiator)>. 2000년 개봉돼 큰 사랑을 받은 이 영화 촬영장소는 로마의 콜로세움이 아니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엘젬 원형경기장이다. 엘젬 원형경기장은 현존하는 검투 경기장으로는 로마의 콜로세움 다음으로 크다. 엘젬 원형경기장 옆에 로마 모자이크 박물관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그 중 한 작품을 보자.

인물 2명이 등장한다. 왼쪽에 망토 클라미스를 걸치고 활을 손에 든채 알몸으로 달려가는 남자. 활은 아폴론을 상징하는 제유적 대유법이다. 아폴론의 머리에 월계관이 보인다. 월계관 역시 아폴론의 제유적 대유다. 아폴론 맞은 편에 반나의 여인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내달린다. 아폴론의 사랑을 피해 달아나는 모습이다.

월계관을 쓴 아폴론이 다프네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하는 모습. 폼페이 출토. 1세기. 나폴리 이탈리아 갤러리
월계관을 쓴 아폴론이 다프네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하는 모습. 폼페이 출토. 1세기. 나폴리 이탈리아 갤러리

월계관을 쓴 아폴론이 다프네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카를로 마라타 17세기. 브뤼셀 벨기에 왕립 미술관
월계관을 쓴 아폴론이 다프네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카를로 마라타 17세기. 브뤼셀 벨기에 왕립 미술관

◆아폴론 겁탈 피한 다프네 월계수로 변해

아폴론은 바람둥이다. 요정 다프네를 마음에 두고 그녀와 취하고자 했다. 하지만, 다프네는 순결을 지키고 싶었다. 아폴론이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프네를 겁탈하려 하자 다프네는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힘에 부친 다프네가 아폴론의 억센 손아귀에 잡힐 즈음. 보다 못한 다프네의 아버지 강의 신 라돈(페이오네스)이 나섰다.

그는 딸의 순결을 지켜주기 위해 딸을 나무로 바꿔 버렸다. 그 나무가 월계수다. 나폴리 이탈리아 갤러리에 전시중인 폼페이 출토 프레스코에는 손부터 월계수로 변하는 모습이 잘 담겼다. 브뤼셀 벨기에 왕립 미술관의 카를로 마라타 작 17세기 그림에는 월계수로 변하는 다프네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다.

◆올림픽 넘어 일상에서 월계관 사용

성범죄 긴급체포대상 아폴론은 다프네를 잊지 못하고 월계수를 자신의 성수(聖樹)로 삼았다. 월계관 전통의 뿌리다. 피티아 경기나 올림픽 경기에서 쓰인 올리브관, 월계관은 그리스인들의 일상에서도 명예의 상징으로 활용됐다. 특히 민주적 공화체제가 아닌 왕정제를 유지하던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에서는 귀족 같은 상류사회에서 심포지온이나 공식행사 때 머리에 나뭇잎관을 쓰는 게 유행이었다.

월계관 B.C4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월계관 B.C4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올리브관 B.C4세기.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
올리브관 B.C4세기. 테살로니키 고고학 박물관

◆월계관 말고도 담쟁이, 도금양, 참나무잎도 사용

종류도 다양해서 올리브관, 월계관, 도금양관, 참나무잎관, 담쟁이잎관... 나아가 이들 재료를 혼합한 관도 쓰였다. 여성들은 꽃으로 만든 화관을 쓰기도 했다. 살아 있을 때만이 아니다. 죽어 장례를 치른 뒤 무덤에 부장품으로 금나뭇잎관을 만들어 넣어줬다. 서유럽 주요 박물관에는 그리스 무덤에서 출토한 다양한 나뭇잎 무늬 금관들이 출토된다.

그런데 이 올리브관, 월계관, 도금양관을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동양권에는 보기 힘들거나 아예 없는 나무여서 더욱 그렇다. 대략 구분해 보면 올리브관의 잎이 제일 가늘고, 그 다음 월계관이다. 도금양관은 동그란 꽃을 함께 매다는 특징을 보인다. 담쟁이나 참나무잎관은 생김이 달라 쉽게 구분할수 있다.

나뭇잎관을 쓴 로마 시민. 로마 시대 유행한 남자 초상화 밈. 폼페이 출토. 1세기.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나뭇잎관을 쓴 로마 시민. 로마 시대 유행한 남자 초상화 밈. 폼페이 출토. 1세기.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로마시대 황제는 물론 일반인도 월계관 명예 상징

로마는 그리스의 나뭇잎관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공화정 체제 로마의 상류층 귀족들이 이를 받아 사용했다. 아폴론이 놀라 형님이라고 부를 만큼 이름난 바람둥이 카이사르. 그는 저녁이면 살짝 벗겨진 대머리를 월계관이나 올리브관으로 가리고 여인들을 만나러 다녔다.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 이후 로마 황제들은 이런 전통을 충실히 이었다. 황제를 묘사한 주화나 조각에는 어김없이 월계관 등을 쓴 모습이다. 황제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요즘 카톡 프로필 사진처럼 자신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릴 때 남자들의 경우 반드시 월계관을 쓴 모습으로 나타냈다.

월계관 쓴 단테.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
월계관 쓴 단테.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

◆르네상스 비조 단테 이후 월계관은 문학 거장 수요

기독교 이후 사라졌던 전통은 고대 그리스 로마로의 부활을 알린 르네상스 이후 되살아난다. 문학에서 르네상스의 비조는 단테다. 단테는 고국 피렌체 시민들에게 자신에게 월계관을 주어야 한다고 요구할 정도였다. 단테나 그의 숭배자이자 르네상스 문학의 또 다른 개척자 페트라르카는 월계관을 쓴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후 서양 문학사에서 1616년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제임스 1세가 시작한 영국 계관시인(Poet Laureate, 桂冠詩人) 전통은 확고하게 자리잡는다.

나폴레옹 대관식. 다비드 1806년-1807년. 루브르 박물관
나폴레옹 대관식. 다비드 1806년-1807년. 루브르 박물관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에도 월계관 사용

문학만이 아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뒤엎고 황제가 된 나폴레옹. 1804년 황제대관식을 치렀다. 고전주의 대표 화가 다비드가 1806-1807년 그린 나폴레옹 대관식 그림에는 월계관을 쓴 나폴레옹이 황후 조세핀에게 보석관을 씌워주는 모습이 잘 담겼다. 아폴론의 성범죄가 이리도 오랜 시간을 거치며 인류의 명예를 상징하는 코드로 확산될 줄은 아폴론도 이를 활용한 델포이 아폴론 신전의 피티아도 무엇보다 가련한 요정 다프네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터이다.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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