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냉면인문학

냉면은 북한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남한에도 진주냉면, 의령메밀소바, 강원도 막국수 등이 남한식 냉면문화의 일단을 보여준다. 대구의 경우 강산면옥, 대동면옥, 부산안면옥 3인방이 50년대 대구에서 냉면의 신지평을 열었다. 북한에는 비빔냉면이 없다. 남한의 냉면업자가 마케팅 일환으로 비빔냉면을 추가했다.
냉면은 북한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남한에도 진주냉면, 의령메밀소바, 강원도 막국수 등이 남한식 냉면문화의 일단을 보여준다. 대구의 경우 강산면옥, 대동면옥, 부산안면옥 3인방이 50년대 대구에서 냉면의 신지평을 열었다. 북한에는 비빔냉면이 없다. 남한의 냉면업자가 마케팅 일환으로 비빔냉면을 추가했다.

국수와 냉면 사이. 열정과 냉정 사이랄까? 밀가루와 메밀가루, 그리고 감자와 고구마 전분의 밀당관계. 그 흐름이 별별 면을 변주하게 된다. 국수 인문학은 다음에 소개하고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가을로 접어든다고 하는 처서(處暑)까지 지났음에도 폭염의 기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 별난 아열대의 국면을 달래기 위한 냉면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멀티플 냉면 스펙트럼

냉면의 스펙트럼은 의외로 넓다.

육전이 올라간 진주냉면.

대구에서 잠시 반짝했던

북한에선 냉면, 그게 강원도로 내려오면 '막국수', 인천으로 오면 '쫄면', 부산으로 오면 '밀면('밀가루냉면'의 준말), 경남 의령으로 오면 '메밀소바'로 변신을 한다.

냉면의 주재료는 일단 메밀가루. 예전 북한 메밀은 찰기가 있어 100% 냉면이 가능했다. 하지만 남한으로 오면 접착성이 낮아 쫄깃한 전분을 섞어야 한다. 북한에서는 감자, 남쪽에서는 고구마 전분에 집중한다. 잡채용 당면은 거의 고구마 전분을 이용한다.

대구 대명동 단포식당
육전이 올라간 진주냉면.

대구 냉면집에서 빠져선 안 되는 도구가 하나 있다. 바로 가위다. 전분 비율도 거의 70%에 육박하고 게다가 소다까지 가미되면 그 탄력은 고무줄 급. 이빨로 잘라 먹는 게 번거롭다. 그래서 가위로 잘라 먹게 했다. '강원도 냉면'이랄 수 있는 막국수는 그렇게 쫄깃하지 않다. 거의 묵사발 식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대구 냉면은 너무나 질기다.

요즘 대구 식도락가의 냉면 입맛이 전국구로 발전했다. 대구의 대표 냉면집이 된 대동면옥도 그런 흐름을 반영했다. 물냉면도 입맛에 맞게 두 종류를 마련했다. 하나는 평양식, 또 하나는 가위로 잘라 먹어야 되는 함흥식. 최근 평양식을 먹어봤는데 메밀향도 느껴지고 별로 질기지도 않았다. 새콤달콤한 고명식 양념을 전혀 섞지 않아 담백했다. 그런데 상당수 업소는 새콤달콤한 물회처럼 진한 양념을 첨가한다. 강원도 막국수도 그런 식으로 넘어가고 있다. 가창면 김삿갓 막국수도 단골집인데 진한 양념이 조금 부담이 된다. 잔치국수의 영향 탓인 것 같았다. 아무튼, 대구의 대체적인 냉면은 쫄면 같아 아직도 부담스럽다.

◆물냉과 비냉 사이

물냉면과 비빔냉면은 다른 음식이다. 그런데 그걸 동일하게 취급하는 주인이 의외로 많다. 탄생 배경을 모르기 때문이다.

'냉면은 북한 음식'이라고 말하는 이가 적잖다. 아니다. 진주냉면과 의령 메밀소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물냉면은 있어도 비빔냉면은 없다. 함흥에 가면 비빔냉면을 '농마면'이라 한다. 함흥에서는 녹말을 '농마'라 한다. 그러니까 감자 전분으로 만든 당면 같은 면을 삶고 그 위에 가자미‧명태식해를 고명으로 올린다. 물냉면 주재료는 메밀가루이다. 농마면은 질기고 물냉면은 잔치국수처럼 잘 끊긴다. 평양냉면은 동치미국물을 육수로 사용한다. 이제 남쪽에서는 대다수 소고기육수에 의존한다. 특이하게 강원도 양양에서는 동치미육수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춘천을 의식한 듯 막국수란 말 대신 '동치미국수'에 더 방점을 찍는다. 물냉과 비냉의 병치? 남한 냉면 업자들의 마케팅 전략이었다.

대구에서 잠시 반짝했던 '닭살냉면'

막국수는 메밀가루를 70% 이상(강원대학교가 메밀 70%에 밀가루나 고구마 전분 30%를 섞을 때 사람들 입맛에 맞다는 용역보고서를 낸 바 있다) 사용하는 게 좋단다. 실제 춘천막국수의 배합비율도 그렇다.

◆ 막국수~부산 밀면

북한식 냉면이 강원도 국수문화와 부딪히면서 생긴 게 '막국수'. 막국수란 '금방, 바로 뽑은 국수'라는 뜻이다. 그 종류가 다양하다. 크게 4인방(춘천‧원주‧봉평‧양양파)으로 분파된다.

오리지널 막국수는 비빔장 양념에 비비고 육수를 부어 먹는 춘천식과는 다르다. 육수 대신 동치미국물에 말아 먹는다. 특히 양양의 경우 산간은 동치미막국수, 해변 쪽은 '간장막국수'가 유행한다. 춘천 막국수는 동치미보다 사골 육수가 중심을 잡는다. 춘천 남부 막국수는 돼지 뼈를 우려낸 육수를 쓴다. 춘천 막국수 1번지로 불리는 '샘밭 막국수'는 사골을 12시간가량 고아 사용한다.

봉평식 막국수는 과일로 국물을 만든다. 봉평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막국수'. 사과와 배·양파 등을 갈아 즙을 내 5시간 정도 숙성시킨다. 원주는 특이하게 메밀을 거피하지 않고 통으로 사용해 면발이 유달리 검다. 막강한 냉면집이 수두룩하다. 춘천에서는 대룡산막국수, 유포리막국수, 장평리막국수, 홍천에서는 장원막국수, 인제는 남포면옥과 서호순모밀국수, 속초에서는 삼대막국수, 고성에선 백촌막국수과 핑크빛이 감도는 산북막국수, 양양은 실로암메밀막국수, 송전메밀국수, 문어를 꾸미로 올리는 송월막국수, 주문진의 신리면옥, 강릉의 삼교리동치미막국수, 원주의 황둔막국수, 남경막국수 등을 찾으면 강원도 막국수의 진미를 개괄적으로 느낄 수 있다.

대구 대명동 단포식당 '개화기 냉면'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망개떡의 고장' 의령의 대표 냉면 같은 소바가 있다. '의령소바'다. '일본식 잔치국수' '의령식 냉면' '의령식 막국수' 등으로 불린다. 언뜻 보면 밥에 장국을 붓고 찢은 닭가슴살, 달걀지단, 빈대떡 등을 올린 '평양온반' 같다. 그 온반에서 밥 대신 메밀 사리를 넣으면 의령소바가 될 것 같다. 의령전통시장에 가면 다시식당‧화정소바‧의령메밀소바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한다. 대구에도 진출을 했다.

참고로 전북 전주에 가면 희한하게 콩국수 전문점이 소바라는 일본식 메밀면의 이름을 단 가게가 많다. 대표주자는 금암동 '금암소바'. 전주시 전주천변 남부시장에 있는 '진미집'은 소바콩국수의 원조.

밀면은 '밀가루냉면'의 준말. 부산밀면도 북한 냉면의 특별한 변신. 다시 말해 북한 피란민이 귀해진 메밀 대신 밀가루를 사용해 밀면을 만든 것이다. 원조는 우암동 '내호냉면'. 밀면 대중화의 주역은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밀면'. 최근에는 부산진구 개금동에 '개금냉면'도 세를 키우고 있다.

◆진주냉면

예전부터 '북 평양, 남 진주'라고 했다. 북한에선 평양냉면, 남한에선 진주냉면을 알아줬다.

식생활문화연구가인 김영복의 노력에 힘입어 태어나고 현재 하연옥‧박군자 두 사람의 이름이 따라다니는 진주냉면. 육수가 특색이 있다. 다른 곳과 달리 소고기 육수가 베이스가 아니다. 멸치, 새우등 각종 해산물로 뽑는다. 멸치가 가장 많이 들어간다. 흥미로운 건 육수의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달궈진 무쇠를 집어넣고 15일간의 숙성절차를 거친다. 특이하게 '쇠고기 육전'을 고명으로 올린다. 진주냉면의 면을 빚을 때 산청산 '장밀'을 사용한다.

◆냉면전문점이라면

냉면 전문점이라면? 일단 면을 다른 업자한테 납품받아선 절대 안 된다. 대다수 번거롭고 가격이 비싸질 것 같아 면을 제면공장, 식자재상회 등으로부터 받아서 사용한다. 여기서부터 불합격이다. 냉면전문가라고 하면 직접 자기만의 메밀·전분 혼합비율을 갖고 있어야 한다. 철학이 없으면 그 비율을 못 찾는다.

국내산 메밀로 만든 냉면만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수요공급상 국내산 메밀은 가격이 초고가라서 웬만해선 선택할 수 없다. 물량도 한정돼 있다. 강원도 춘천 막국수 영농조합법인도 거의 수입산이다.

물냉면은 질겨서는 안 된다. 상대적으로 비빔냉면은 질겨도 된다. 예전에는 기술이 안 좋아 메밀 100%로 반죽을 하면 잘 끊어져 면을 잘 만들 수가 없었다. 응집력을 위해 전분을 접착제처럼 일정량 섞었다. 그런데 이젠 익반죽 기술이 좋아 잘 끊어지지 않는다. 춘천의 일반 막국수 집에서도 100% 메밀 냉면을 판다.

'온육수'와 '면수'를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온육수는 쇠고기 각종 부위를 삶은 뜨거운 육수이다. 면수는 메밀 생면을 삶은 물. 일본에선 가츠오부시를 주재료로 만든 조금 짠맛이 감도는 '츠유(소바용 조리간장)'는 필수다. 소바를 츠유에 3분의 1쯤 담가 먹은 뒤 남은 츠유에 면수를 넣어 희석해 디저트처럼 먹는데 이 희석수를 일명 '소바유'라고 한다.

참고로 일본에선 '니하치소바(二八蕎麥)'라 해서 메밀과 밀가루를 8대 2 비율로 섞은 걸 가장 대중적으로 소비한다. 100% 메밀가루만 사용하면 '나마코우치소바', 혹은 '주와루소바(十割蕎麥)'라 한다. '니하치소바'를 동성로에서 오픈했던 이경엽 사장, 그는 사업을 접고 지금 '한자마당' 인기 유튜버로 변신했다.

대구식 전주비빔밥의 신지평을 열었던 개정식당의 별미냉면인 '개정물냉면'도 대구식 냉면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다. 하지만 대구식 진주냉면을 선보였던 대명동 '수미담'(전 르네상스 레스토랑)의 대구식 진주냉면, 수성못 옆 '닭살냉면', '반월당 밀면', 그리고 남구 대명9동 '단포식당'의 시그니처 냉면인 '개화기 냉면' 등은 수성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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