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과 협상을 두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면서 그 속내에 대해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란은 자국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 암살이라는 수모를 당한 뒤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을 예고했다. 또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대규모 공습 이후 보복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 와중에 미국과 협상 가능성까지 비추면서 고도의 연막 작전이라는 평가와 보복 방침에서 한 발 후퇴했다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과 핵 협상 가능"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27일(현지시간) 미국과 핵 협상 가능성을 밝혔다. 하메네이는 이날 이란 국영 TV로 방송된 영상에서 이란 정부가 적과 논의하는 데 "장벽이 없다"며 미국과의 핵 협상 추진을 시사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하메네이는 "어떤 곳에서는 같은 적과 관계를 맺는 것은 모순이 아니며 장벽도 없다"며 "문제는 우리의 희망을 적에게 걸고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발언은 개혁파인 마수드 페제시키안 신임 이란 대통령 및 내각과의 회의에서 나왔다.
하메네이의 발언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서방의 제재에 대해 이란과 미국 간 비공식 채널을 통한 대화보다 더 실질적인 협상 의사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하메네이도 개혁파인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제재 완화 목표를 공유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 해제를 위해 서방과 핵 협상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하메네이의 발언은 11월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중 누가 승리하느냐가 이란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때인 2018년 이란과 서방의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파기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복원한 바 있다.
미국외교협회의 이란 전문가인 레이 타케이 선임연구원은 하메네이의 이번 발언과 관련, "(이란) 이전 행정부의 많은 사람은 트럼프를 예측할 수 없는 인물로 보기 때문에 트럼프와 협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본질적으로 해리스가 승리할 경우를 가정해 협상의 매개변수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은 하메네이의 발언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은 이란의 말이 아닌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며 양국의 갈등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복 방침 재확인
동시에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방침을 재확인하고 있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지난 25일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테헤란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테러 공격(이스마일 하니예 암살)에 대해 이란은 확실히 대응할 것"이라며 "이는 잘 측정되고 계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확전(escalation)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이스라엘과 달리 이를 추구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모하마드 호세인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도 26일 "순교자 하니예의 피에 대한 '저항의 축'과 이란의 복수는 확실하다"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 방침을 재확인했다.
미국도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방송 '채널 12'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의 공격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그들(이란)이 여전히 원하면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란에 대한 우리의 메시지는 일관적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첫째 그것(대이스라엘 공격)을 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 (이란이) 그것을 할 때 우리는 이스라엘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분명한 이란 속내
이란은 속내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는 "전쟁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항상 총을 쥐는 것만이 전쟁은 아니다. 정확하게 생각하거나 말하고 식별하며 정조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6일 이란이 이스라엘의 추가적인 공격을 억제하고 역내 전면전 발발을 피하려 하는 만큼 헤즈볼라의 보복과 성공 선언을 확전 회피용 은폐막으로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 전문가 사남 바킬은 "이란의 셈법은 항상 나머지 '저항의 축' 구성원들과 필수적으로 시너지 관계에 있지는 않다"며 "이란이 공격을 가하거나 다음에 일어날 일에 개입한다는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란이 헤즈볼라의 대이스라엘 보복 공격을 자신들의 공격 계획과 동일시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스라엘 안보 관리는 "현재로선 이란이 이것(헤즈볼라의 보복)을 자신들의 보복으로 간주할지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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