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분관 개관은 고미술뿐 아니라 미술 전반에 대한 팬덤을 넓힐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도를 문화적 역량이 상당한 대구에서 펼쳐 보일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최근 만난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 관장의 얼굴에는 기쁨과 복잡한 마음이 함께 드러났다.
개관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전 관장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첫 지역 분관 설립 의사를 내비친 이후 10년 간 스쳐간 수많은 일들과, 그 과정에서 함께 노력해주신 수많은 분들이 떠오른다"며 "막상 개관을 앞두고 보니, 흔한 말이지만 감회가 새롭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음은 전 관장과의 일문일답.
- 앞으로 서울 간송미술관과 대구 간송미술관, 각각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기존의 간송미술관은 전신인 보화각 건물이 80년 넘은 건물이고 등록문화재다보니 환경상 계속 전시를 여는 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간송미술관은 연구 위주로, 대구간송미술관은 관람객들을 항상 계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상설 전시 기관의 역할을 할 예정이다. 대구간송미술관은 특히 전시뿐만 아니라 연계 교육과 지류 문화재 보존·복원·보관 등 다양한 시도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 개관 이전부터 대구에서 문화 강연 '간송다담'을 열거나 전국 슬로건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어왔다.
▶대구간송미술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역 문화 생태계의 일원이 돼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민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다양한 문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향유 기회를 늘리고 지역 문화 기반을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8년 대구미술관에서 개최한 '조선회화명품전'은 90여 일간 16만여 명이 찾을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는데, 그것이 최초의 마중물 같은 것이었다. 이후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이 확정되고 2022년 '간송다담' 강연을 열었다. 3주간 3천명 이상이 찾아 강의를 들을 정도로 높은 관심을 체감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열었던 전국 슬로건 공모전에는 총 860건이 접수됐다. 지역은 물론, 전국에 대구간송미술관을 알리고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을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일찍부터 그러한 이벤트를 열어왔다.
- 최근 소장품인 국보급 유물 90여 점이 대구로 극비리에 무사히 이송됐는데.
▶보화각이 1971년 간송미술관으로 명칭을 바꾼 이래 최초, 최대 규모의 이송이었기에 신경 쓸 부분이 많았다. 국보와 보물 등 문화유산 98점의 이송 거리만 305km이었다. 이렇게 많은 수가, 멀리까지 옮겨진 것이 처음이었기에 많은 분들이 고생해주셨다. 직접 차에 동승해서 오며 많은 분들의 수고로움을 가까이서 봤다.
훈민정음 해례본 같은 경우는 물론 서울 시내에서 움직일 때도 경찰청 호송을 받지만, 이번에는 여러 지역을 거쳐와야 하다보니 서울경찰청에서 시작해 고속도로 순찰대도 3번 바뀌었고, 대구경찰청에서도 도와주셨다.
또 서울에서 출발할 때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전, 현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신 아버지와 숙부님 모두 비 우(雨) 자를 돌림자로 쓰시는데, 재단이 뭘 할 때마다 비가 많이 온다. 생장의 기운을 돕는다는 점에서 상서롭게 보는 분도 있고 좋은 징조라 생각한다.(웃음) 어쨌든 무사히 대구까지 이송을 마쳐 다행이고,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
-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은 보화각 시절을 제외하고 첫 서울을 벗어나는 것. 어떤 의미가 있나.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간송 선생이 안동에서 취득했고, 지금까지 서울에서 지내왔다. 그간 간송미술관 외부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에서만 전시됐을 뿐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입장에서는 1400년대에 태어나서 가장 오랜 기간을 보냈던 고향인 대구경북을 떠난 지 80년 만에 다시 찾는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 미디어아트 전시, 메타버스 구축, NFT 출시 등 고미술품을 활용한 다양한 장르로의 확장을 시도해왔다. 그 이유는.
▶미술관, 박물관 등의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지속 가능성이다. 그것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돼야하는데, 그들의 특징 중 하나가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것. 미디어가 익숙하고 편안한 그 세대들이 좀 더 함께 우리 문화유산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문화유산은 전시도 중요하지만 보존이 가장 우선이기에 시공간의 제약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디지털화는 그러한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다. 내가 원할 때, 어디에서든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세대의,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좀 더 알고 싶도록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부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도를 해왔던 부분으로, 지금도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파리의 한국문화원의 샌드박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혜원전신첩 디지털화로 만든 미디어 작품, 게임을 전세계인들이 즐기고 있다.
- 대구간송미술관 전시실 구성에 있어 특색 있는 부분은.
▶6개의 전시장이 있는데, 개관전에서는 하나도 빠짐 없이 작품들을 채워 선보일 예정이다.
미디어실은 40m 길이의 스크린을 설치해 실감 영상 콘텐츠를 상영할 예정이며, 많은 분들이 보고싶어하는 메인 콘텐츠인 미인도는 많은 호평을 받은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컨셉으로, 소수의 방문객과 대면해 음악과 함께 감동을 전하는 방식으로 전시실을 구성하려 한다. 초기에는 관람객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돼 관람 방식을 아직 조정 중이지만, 어떻게 하면 작품과 관람객이 조용히 교감하고 사유하는 형태를 구현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다.
훈민정음실에서는 한글에 대한 우리의 추억을 담아, 작가로 활동 중인 송예슬 뉴욕대(NYU) 교수와의 협업 전시를 선보인다. 음성, 영상 등 미디어를 활용해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감동을 더할 것으로 기대한다.
- 대구간송미술관의 강점 중 하나가 될 수리·복원 사업은.
▶대구경북은 우리나라 지류 유물의 60%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집적도가 굉장히 높은 곳이다. 하지만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이제 보존이 쉽지 않은 환경이 됐고, 물려 받아 보존해오고 있는 분들도 곤란한 경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간송미술관은 50년 이상 수많은 케이스들을 보수, 복원, 보존하는 작업을 이어오며 노하우와 신뢰를 쌓아왔기에 그런 부분에 있어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나갈 예정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보다 좀 더 크게 수장고를 지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또한 나아가 그렇게 우리에게 맡겨지는 귀중한 유물들을 연구하고 활용할 수 있는 허브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 최근에는 미술관이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 체험 콘텐츠를 담는 공간이 되고 있다. 그와 관련한 계획은.
▶많은 분들이 대구간송미술관을 좀 더 친근하고 유익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 연계 교육,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무엇보다 유·청소년기 문화 관련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교육청 등과 논의해 추후 초등학생 전시해설사를 양성하는 방안도 추진하려 한다. 그리고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유물해설사 교육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 다양한 연령대가 고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나갈 수 있도록 차차 관련 콘텐츠를 운영해나갈 것이다.
- 대구간송미술관의 장기적인 컨셉은 무엇인지.
▶인터뷰 처음에 대구 문화 기반을 확장하고자 한다는 것의 근간에는 결국 우리 미술에 대한 팬덤 커뮤니티를 키우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을 계기로 고미술은 물론 미술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사람들이 미술을 먼저 찾고 관련 수요를 높이는 데 집중하려 한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지역성이다. 대구는 국채보상운동 등 애국과 민족 사랑에 대한 의식이 다른 지역보다 강하고, 디아프(Diaf)나 딤프(DIMF) 등을 10년 이상 지속하고 성장시켜오며 상당한 문화적 역량을 보여줬다. 그러한 바탕이 된 지역에서 협업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그 역량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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