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로봇 노동자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로봇이 테이블을 안내해 드립니다." 식당에서 우리 식구는 로봇을 졸졸 따라가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는 로봇들이 고용되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줄었다. 로봇들의 업무 분장은 명확했다.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는 로봇, 음식을 갖다주는 로봇, 빈 그릇을 수거하는 로봇, 국수를 조리하는 로봇…. 특히 국수 담당 로봇은 압권(壓卷)이다. 면을 육수에 담갔다가 건져 내 탈탈 털어 물기를 빼는 섬세함은 장인(匠人)의 면모(面貌)를 닮았다.

바삐 움직이는 로봇들을 보니, 상상력이 발동했다. 식당에서 일하는 로봇들도 쉬는 시간이 있을까.(근로기준법은 근로 시간이 4시간인 경우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 1시간 이상의 휴게 시간을 보장한다.) 탈진(방전·放電) 전까지 일만 할 것 같다. 그래도 짬짬이 모여서 직장 상사의 뒷담화를 할지 누가 알랴. 그러다 전태일 열사처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칠지 모른다.

지난 6월 경북 구미시의 '1호 로봇 주무관'이 계단에서 굴러 파손됐다. 로봇 주무관은 지난해 8월 구미시가 도입한 인공지능(AI) 행정 서비스 로봇이다. 담당 업무는 문서 배달과 청사 안내, 홍보 등이다.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던 로봇 주무관이 순직(殉職)하니, 누리꾼의 댓글이 걸작(傑作)이다. "일이 너무 힘들어 로봇이 계단에서 뛰어내렸다" "로봇 주무관의 명복을 빈다" "월급을 제대로 줬는지 노동부 조사가 필요하다" 등등. 로봇이 사람인 양, 감정이입(感情移入)된 반응들이다. 일본에서는 작동을 멈춘 반려견 로봇 '아이보'의 장례식까지 치러 주고 있다고 한다. 로봇과 이별을 슬퍼하는 시대,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로봇 손주' '로봇 이모님'이 낯설지 않다. '로봇 손주'는 고독사 위험이 있는 어르신들을 돌보는 로봇이다. 얼굴 보기 힘든 친손주보다 곁에서 애교를 부리는 로봇 손주가 더 살갑다. '로봇 이모님'은 로봇 청소기, 건조기 등을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이다. 가사 노동을 척척 해주니, '이모님'이라 불러도 무방(無妨)하다. 로봇은 힘든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준다. 다만 21세기판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산업혁명 때 방직기 등장으로 일자리를 뺏긴 노동자들이 기계를 때려 부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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