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비극… '방치하면 사회적 재앙 될 것' 90대 치매 노모와 60대 딸 둘이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사망하자 자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를 보도한 헤드라인 기사의 일부다. 장자(長子)가 집안의 대(代)를 이어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한국 사회도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 중증 노인질환을 돌봐야 하는 가족 돌봄 노동은 사회제도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일본 사회의 노인 돌봄 제도인 '개호'(介護) 문화와 중증 노모를 부양하며 살아가는 장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연극<장녀들>(7.28~8.4,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프로젝트 아일랜드, 드라마투르그 배선애) 시노다 세츠코의 소설을 서지혜 연출이 각색해 무대화한 공연이다.
초연 공연에서 <장녀들>은 1부, '집 지키는 딸' 2부, '퍼스트레이디'로만 묶었었다. 치매와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부모를 부양(扶養)하며 살아가는 장녀(여성)의 삶을 다루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2부 '미션'을 연장해 3부로 구성된 소설이 무대로 완성된 것이다. '미션'을 통해서는 삶과 죽음을 불교의 윤회(輪廻)와 업(業)의 작가적 관점으로 한 발 더 다가서며 확장된 무대를 보여준 점이 전작 공연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장녀들>은 인간의 윤리적 모순을 타격하면서도 질병과 죽음, 가족 돌봄에서 해방될 수 없는 삶에서 ' 삶의 진정한 행복의 가치'에 관해 묻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장녀들은 노노(老老)돌봄노동, 노인복지, 중증 치매와 노인질환의 사회복지의 제도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이면으로 들추어내고 있는 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 욕망의 서사이다. 초연공연 리뷰에서는 <장녀들>을 사회 돌봄제도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로 다루었다. 이번 리뷰에서는 돌봄노동의 주체(장녀)가 아닌 대상자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죽음'의 문제을 불교적인 시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 유키의 존재와 마츠코의 환시(幻視)
1부 '집 지키는 딸'은 치매에 걸린 엄마를 부양하는 장녀 나오미(이도유재 분)의 이야기이다. 2부'미션'에서는 고독사한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NGO 의사 요리코(이진경 분)가 등장한다. 수천 년 동안 해발 4천 미터 히말라야 고지대에서 살아온 마투 마을은 전통문화가 현대적으로 관광화되는 것을 거부하며 약초의 라마(남동진 분)의 절대적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3부 '퍼스트레이디'는 비혼주의자인 게이코(서지우 분)가 당뇨와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엄마(황정민 분)를 돌보며 지역사회 저명한 의사인 아빠의 퍼스트레이디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무대는 일본식 목조 형태의 분위기다. 나오미의 집, 히말라야 오지마을, 게이코의 가옥을 유동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퍼즐식 구조로 전환된다. 병원, 집, 카페, 공항, 영화관, 오지마을 등으로 3부까지 이어지는 장면전환이 조립식 건축물을 분해하고 재조립되는 것처럼 공간구조를 이동시키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공항 출국장 장면을 통해 장녀들의 시선을 교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동일 사회구조에서 살아가는 장녀들의 현재이다. 연출은 돌봄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장녀들 삶의 소외, 고독, 고립 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한다. 1부 집 지키는 딸의 영화관 장면이다. 나오미는 마치 공포 영화를 보는 듯하고 관람객들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동일한 시선과 움직임으로 영화 장면의 분위기를 드러내는데 군중의 틈으로 나오미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무표정한 시선을 드러내 보인다. 연출은 영화관과 카페 장면을 통해 사회제도로부터 소외된 장녀들의 심리적인 내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장녀들>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의 설정은 치매를 앓고 있는 나오미(이도유재)의 엄마 마츠코 (김화영 분)가 환시와 환청에 시달리고 손녀 유키(강수현 분)와 죽은 언니 유키(김혜윤 분)를 동일시 하고 있다는 점이다.
2부의 미션(아버지와 엄마, 소노다와 위생병들의 죽음)이 삶과 죽음으로 연결되고 3부 퍼스트레이디도 게이코의 엄마가 신장염 말기로 간절한 삶에 애착을 보인다. 장녀들은 표층적으로 제도적인 사회구조를 다루면서도 돌봄의 대상한테는 죽음에 대한 문제이다. 1~3부가 다른 듯하면서도 하나로 연결되는 것은 연극 <장녀들>이 삶과 죽음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장면을 되돌려 보자. 유키는 두 사람이 존재한다. 마츠코의 손녀이자 나오미의 딸 유키와 마츠코가 어린 시절에 죽은 언니 유키다. 극이 진행되면서 마츠코는 환영으로 존재하는 어린 유키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마츠코의 곁을 분신(分身)처럼 환영으로 배회하는 것도 언니(장녀) 유키다. 1부에서 유키의 존재와 2부에서 요리코(이진경 분)도 마츠코처럼 좌석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채 잿빛 시체로 고독사한 아버지의 환시와 환청을 듣게 된다. 손녀와 어린시절 언니를 동일한 이름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과 요리코는 아버지 죽음으로부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마투마을 전통문화를 거부한 자들은 히말라야산맥에서 죽음으로 되돌아왔다. 작가는 삶과 죽음의 본질을 불교적으로 윤회와 업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순례길의 삶과 죽음
고통도, 욕망도, 행복도 모든 것이 인간 자신의 마음에서 출발한다. 현대의학은 고통과 생명을 연장할 뿐 인간의 욕망을 수술대에 올리고 행복의 가치를 약으로 치유해 줄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2부는 해발 4천 미터 고지대에서 살아가며 삶과 죽음도 자연에 맡긴 채 약초로 병을 고치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은 인생의 미션을 수행한뒤 순례길을 떠난다. 순례길 죽음은 축복이다. 인간의 죽음과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해방 시켜 줄 수 있는 것은 현대의학으로도 완전한 치유가 불가능 하다는 것. 인간은 삶에서 죽음으로 연속되기 때문에 불안과 고통,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순례길을 떠나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깨달음인 것이다.
구천을 떠돌며 아버지의 환영을 마주한 요리코를 해방시켜 주는 것은 라마의 주술이다. 라마 집을 방문한 요리코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환영과 환청을 듣게 된다. 죽음의 고통은 화염에 휩싸이고 있는 것으로 했고, 요리코는 죽은 소노다를 보게 된다. 무대는 인형으로 치환된 오브제가 올려져 라마의 작두로 목을 날린다. 소노다가 죽게 된 이유도 밝혀지게 되면서도 라마의 주술 행위로 요리코는 죽은 자들로부터 업을 끊고 고통에서 해방된다. 서지혜 연출은 이 장면을 그로테스크하게 연출을 했다. 2부 마지막 장면은 오색깃발의 순례길이다. 현대의학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라마의 약초와 민간신앙을 섬기며 삶과 죽음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마투마을 사람들과 NGO 의사 요리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2부 미션은 1~3부를 관통하고 있는 삶과 죽음, 인간의 욕망과 이기적 위선들을 함축하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행복과 삶은 물질과 현대의학으로 연장될 수 없다는 경고가 아닐까.
마지막 요리코가 순례 길가에 돌무덤을 올려놓음으로써 비로소 라마를 섬기는 마투 마을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삶에 행복은 국민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구조이다. 연극< 장녀들>의 성공적인 무대의 6할은 3시간 40분 동안 장면전환의 균열이 없이 몰아붙이는 서지혜 연출의 미학적인 연속성에 있고 4할은 황정민을 비롯해 1~3부를 몰고 가는 출연 배우들 연기에 있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 김성태, 최무인은 전작과 다르게 연기를 이완화 시키면서 인물 캐릭터가 더 도드라지게 전달되었고 1부 오가와준을 비롯해 다 역할을 수행한 최명경 배우의 캐릭터 연기가 장면의 분위기를 환기하게 할 정도로 두드러졌다. 특히 2부의 배경이 되는 라다크어를 직접 대사로 표현해 언어적 사실감을 높인 것은 배우들의 방대한 연습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YTN 기자 출신인 이교준은 무대 영상에 기자로 목소리 출연해 사실감을 높여주었다. 프로젝트 아일랜드와 연극 <장녀들>을 원팀 무대로 유지하는 동력이다. 균열 없는 템포감과 배우들의 앙상블을 응집해 무대화한 서지혜 연출의 연극적인 미학성을 <장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 2부를 통해 작가적 시각이 명확해졌다 할 수 있다. 연극 <장녀들>은 방대한 소설의 서사가 무대화되는 모범적인 무대이다.
| 연극<장녀들> 배우들과 서지혜 연출의 프로젝트 아일랜드는.
시노다 세츠코의 소설을 서지혜 연출이 각색해 3부로 완성된 연극 <장녀들>에서는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도 볼만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도유재( 1부 나오미), 이진경(2부 요리코), 서지우(3부 게이코)가 각 부별 서사를 중심적으로 끌고 가면서도 김화영, 김귀선, 남동진, 최무인, 김성태 등이 역할을 받쳐내는 유기적인 앙상블들이 무대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3부에서 게이코의 엄마로 분하고 있는 황정민은 이 배우의 감각으로만 표현 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간호사 하시오카, NGO 직원으로 분한 변유정도 존재감을 높이는 캐릭터로 연기했다. 프로젝트 아일랜드 배우 정선미( 1부 마유코, 2부 아지타 역)도 역할의 특징을 포착해 내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김동순, 최명경, 이승우, 이지은, 이승현, 임은지, 강수현, 김혜윤 등 <장녀들>의 출연배우들은 역할의 크기를 떠나 연극의 균형을 이루려는 배우적인 집중력들이 좋다.
2012년 프로젝트아일랜드 창단공연<아일랜드>(혜화동1번지)를 시작으로 이 작품은 그해 밀양공연예술축제 젊은 연출가전에서 남동진, 최무인 빼우가 연기상을 공동수상했다. 이후 일본 Sapporo TGR(Theater Go Round)페스티발에서 대상과 훗카이도 연극재단 올해의 연극 BEST 3에 선정되면서 극단의 대표작품이 되었다. 이후 서지혜 연출은 <황금밥 식당>(2015),<현장검증>(2015)를 선보이면서 연출의 감각성을 알렸고 <일상광기에 대한 이야기>(2018)로 제5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기상(남동진), 월간한국연극 선정 공연베스트7, 공연과 이론 작품상을 비롯해 제39회 서울연극제 대상, 연출상을 수상했다.<고독한 목욕>, , , < 장녀들>로 이어지는 작품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와 인간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서지혜만의 연극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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