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체코 유채꽃밭 사이에 피어날 K-원전

이세용 한울원자력본부장

이세용 한울원자력본부장
이세용 한울원자력본부장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을 주축으로 구성된 '팀코리아'가 체코의 신규 원전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유럽 진출의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이는 한국 원전의 기술과 건설 역량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인정받은 것으로, 유럽형 원전을 도입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유럽에 원전을 수출하는 국가로 성장했음을 입증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이 '원전 강국'인 프랑스를 제치고 유럽 원전 수주를 따낸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한수원이 가진 '온타임-온버짓(on time on budget)' 사업 역량 덕분이다. 이는 정해진 예산으로 적기 시공한다는 것인데, 한국은 지난 50여 년간 총 36기의 원전을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건설하면서 주어진 예산과 공기 내에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인력과 사업 관리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외에도 입증된 가격 경쟁력, 한국 정부의 강화된 원전 수출 정책과 범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수출 지원,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사업의 성공 경험이 축적되어 큰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는 큰 의미가 있다. 한수원이 체코 발주사의 입찰 조건을 가장 충실히 만족시키고, 경제적·기술적 측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입찰서를 제출했다는 것으로, 한수원이 체코에 신규 원전을 공급할 최적의 공급사임을 의미한다.

한국 원전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입증한 만큼 폴란드, 네덜란드 등에서 신규 원전 수주 가능성을 높였고, 이는 원전산업의 성장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고 할 수 있다.

신규 원전 수주를 위한 한수원의 노력은 이뿐만이었을까. 체코 두코바니 지역의 주민들과 다양하게 소통하며 지역 신뢰를 확보하고자 2017년부터 해마다 체코 글로벌 봉사단을 파견해 봉사활동과 문화 교류 활동을 펼쳤으며, 코로나19 때는 마스크 조달이 어려운 지역에 긴급 공급했다.

지난해 8월에는 한수원 본사 소재지인 경주시와 트레비치 간 우호 도시 협정을 체결, 친밀한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또한, 현지 기업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한-체 원자력 및 문화 교류의 날'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고, 7년간 후원하고 있는 체코의 트레비치 아이스하키 팀의 후원 기간을 추가로 연장하는 등 다방면으로 총력전을 펼친 덕분에 노력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체코의 원전 건설 예정지인 두코바니 마을에 들어서면 푸른 밀밭과 노란 유채꽃밭 사이로 두코바니 원자력 발전소 4기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2025년 3월 최종 계약이 체결된다면 이곳에 우리 기술로 만든 '한국형 원전'인 APR1000(Advanced Power Reactor 1000)이 자리 잡을 수 있다.

꽃이 피지 않는 시기는 그 꽃이 더 강해지기 위한 시간이라고 한다. 위축됐던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 속에서도 한수원의 지속적인 노력이 마침내 열매를 맺는 순간이다.

험난했던 수주 과정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덕분에 한국은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이후 15년 만에 원전 수출의 쾌거를 이루었다. 이를 통해 한국 원전의 기술과 건설 역량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인정받은 것이다.

바라카 원전이 사막에서 꽃을 피웠듯이 유채꽃밭에서 피우게 될 K-원전의 모습이 궁금하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를 출발점으로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노란 유채꽃과 함께 한국 원전산업이 글로벌 원전 시장의 중추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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