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느끼는 다양하고 강렬한 감정은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고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 이유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예술이 가진 표현의 힘과 영향력은 정치적 상황에 이용되기도 한다. 예술은 그 자체의 모습이나 현상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인식의 확장과 감정의 연대,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비언어적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1941년 9월 제2차 세계대전 중 동부전선에서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위전이 시작됐다. 나치 독일은 레닌그라드를 872일 동안 봉쇄했고 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던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는 약 4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향곡 제7번(Op. 60)을 완성했다. '레닌그라드'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이 곡은 나치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미국과 연합국들의 인기를 얻게 됐고, 소련 정부는 처절한 투쟁이 벌어지는 레닌그라드에서 이 곡의 연주를 지시했다. 결국 아사자들이 속출하는 현실 속에서도 연주회는 개최됐고 도시 곳곳에 송출되며 시민들의 저항의지를 다시금 일으켜 세우게 된다. 전쟁의 참혹함과 승리에 대한 여정을 그린 이 곡은 소련의 선전용으로 사용되긴 했지만 사회주의체제의 예술탄압과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쇼스타코비치는 아마도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에 의해 자행된 파시즘의 폐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은밀히 묘사한 듯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소련은 자국의 뛰어난 문화예술 수준의 과시를 위해 19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개최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우승한 미국의 반 클라이번(Van Cliburn, 1934~2013)은 정치와 이념을 뛰어넘은 평화의 상징이 됐고 미국의 문화영웅으로 떠올랐다. 4년마다 개최되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비록 정치적 목적에서 시작되었지만 뛰어난 연주자들을 배출하며 국제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대회로 거듭났으나 정치적 개입과 공정성에 대한 의심, 음악시장의 변화에 따른 가치 하락,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의 회원자격 박탈 등으로 위상이 크게 추락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최된 2023년 콩쿠르에서 역대 최대의 한국인 수상자가 배출됐으나 한국의 높아진 예술적 위상이 여러 논란의 중심에서 권위를 의심 받는 콩쿠르에서 증명된 것은 다소 안타까운 측면이 있다.
도구로 이용된 예술은 존중과 신뢰를 얻을 수 없으며 본래의 역할과 의미가 왜곡되기 쉽다. 동시대의 가치를 반영함으로서 예술은 독립성과 다양성을 갖추게 된다. 예술을 통한 공감대와 비판의식이 긍정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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