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교학점제 반년 앞으로<하>] 고교학점제 현장 안착되려면…대입제도-교육과정 함께 가야

수능 넘어선 다양한 입시 전형, 절대평가 등 이뤄져야
질 높은 공교육 보장하기 위해서는 교사 순증 필수적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대구 현풍고에서 학생들이 수강 신청 전 과목 선택을 실습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대구 현풍고에서 학생들이 수강 신청 전 과목 선택을 실습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2017년 11월, 교육부는 고교학점제를 처음 공식화한 '고교학점제 추진 방향 및 연구학교 운영계획'에서 수능 중심 입시·상대 평가 등의 총체적 변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말 수학능력시험(수능) 선택과목 폐지와 정시 비중 40% 유지, 내신 5등급 상대평가 등 고교학점제 취지에 역행하는 대입 제도 개편안을 내놨다. 학생에게 교육 선택권을 준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주도권이 주어지지 않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대입 제도와 교육과정 함께 가야

교육계 전문가들은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수능을 넘어선 다양한 입시 전형, 절대평가(성취평가)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정부가 대입 정시 40% 기조를 유지하며 수능 영향력이 여전히 커질 전망이다. 고교학점제와 수능 중심의 정시 전형은 사실상 '상극'의 제도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재구성한 뒤 이를 대학 전공 선택까지 연결하자는 것이다. 이 취지를 살리자면 '학생부종합전형(학종)+면접'으로 선발하는 수시모집이 지금보다 훨씬 확대되고 다양화돼야 한다.

또 고교학점제는 본래 '절대평가'와 한 묶음으로 설계됐다. 내신 절대평가가 바탕이 돼야 학생들이 등수를 따져 입시에 유리한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이 아닌,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 과정(성취)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학과 교수는 "고교학점제의 관점에서 학생부 교과전형과 수능 위주 정시전형은 결과 중심의 전형이라는 점에서 단점이 크다"며 "절대평가, 과정 중심 평가, 정성 평가의 틀로의 대전환이 필요하고 수능은 비중을 줄여 학력을 확인하는 보조장치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에서 근무하는 정영헌 경상고 교사도 "고교학점제가 입시와 관계없이 정상적으로 시행된다면 학생들의 성장에 훨씬 도움이 된다"면서도 "여전히 대입이 목적인 상황에서 다양한 과목을 가지고 토론을 넣어 수업하고, 서술형 위주로 평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대구 함지고에서 고교학점제 관련 교육과정 박람회를 실시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대구 함지고에서 고교학점제 관련 교육과정 박람회를 실시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과목 증가에 교사 수급 방안 필수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과목이 늘어나면서 교사 한 명당 가르쳐야 할 과목도 늘어나게 된다.

학생들의 다양한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고 질 높은 공교육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교사 순증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대구 지역의 한 고교 교사는 "현재 정원으로는 새로이 개설될 교과에 대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고교학점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교사 정원 유지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과 과목이 아닌 진로·교양 교과는 대학처럼 외부 강사나 산학겸임교사를 기용하는 방안도 대안책으로 제시된다. 다과목 지도,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최소 성취수준 미도달 학생 보충 지도 등으로 늘어나는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과에만 전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고교학점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추가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교수는 "수당이 신설되지 않으면 외부 강사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표하며 18시간 이상 또는 3과목 이상 가르치는 교사나 야간·주말 강좌를 개설하는 교사에게 별도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실제로 고교학점제를 운영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경우, 심화 과목 개설을 위한 교사 전문성 향상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고 해당 교사의 수업 시수에 따라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고교학점제 적용하는 해외 사례는

고교학점제가 잘 적용되고 있는 나라들은 교육자치 실현으로 학교에 권한이 많이 이양돼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핀란드의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총 75개의 과목 이수하고 졸업시험에 합격하면 졸업할 수 있도록 한다. 낙제할 경우 과목 재이수의 기회가 제공되고 졸업 시기를 연장할 수 있다. 대입 제도의 핵심은 졸업시험으로, 정부는 모든 전형에서 졸업시험을 50% 이상 반영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또 학교의 교육과정 자율성을 넓게 보장해 국가 선택과목보다 학교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학교 선택과목이 훨씬 더 많다.

미국 LA도 지역 단위의 교육자치가 잘 구현돼 있어 지역 교육구가 가지는 권리가 많다. 지역 교육구는 각 학교의 고교학점제 교육 과정 개발·운영을 지원하고 학교의 정책 수립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대입 제도를 가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온타리오주의 경우 학생들은 총 30학점을 이수하고 주정부 졸업시험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다. 대학은 고교 교육의 시스템을 신뢰해 대학 진학 시 내신을 100% 반영한다. 우리나라 고3에 해당하는 12학년 과목의 성적도 높은 비율로 반영해 학생들이 졸업까지 내신에 최선을 다해야 대학 진학이 가능한 구조다.

또 유연한 교육과정 운영으로 학점 미이수 시 미이수 과목을 타 과목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학습 부진 학생을 위한 학점 회복 과정도 운영해 학생들이 최대한 이수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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