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만 해도 은행 입사 전형은 악명 높았다. 당시 유행처럼 번진 야외 면접이 그 이유다. 1박 2일 합숙 면접을 보는가 하면 등산 면접을 진행하는 곳도 있었다. 합격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은행들은 통과 의례처럼 신입사원 연수 일정에 야간 산행이나 행군을 끼워 넣었다. 이런 풍경은 2018년 이후로 보기 힘들어졌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무리한 야외 활동을 시키는 건 가혹 행위에 가까운 데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다.
며칠 전 한 은행원과 대화 중에 '요즘 하루가 멀다고 금융사고가 터지는 게 입사 과정에서 체력 검사가 축소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등산 같은 야외 면접이 정신력 강한 사람을 골라내는 역할을 해 줬는데, 지금은 '극한 상황'이 닥쳤을 때 됨됨이가 어떤지 평가하기 어려워졌다는 소리다.
이런 말이 나온 건 돈을 만지는 직업 특성상 구성원 인성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은행 규모가 클수록 금융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의견도 맥락을 같이한다. 농협은행에서는 지난달 한 지점 직원이 지인 명의를 도용해 약 117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자 극단적 선택을 한 일이 있었다. 지난 6월에는 우리은행에서 대출 신청서와 입금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고객 대출금 약 100억원을 빼돌린 지점 직원이 적발됐다.
은행 안에서도 비교적 큰돈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종사자들 전언이다. 금융윤리인증센터는 조직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와 비윤리의식 같은 사람 자체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 '휴먼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게 금융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이 자체적인 통제력을 높이고 조직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내부통제 시스템'을 탄탄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임원별 책무 범위와 내용을 구체화하는 '책무구조도' 도입도 의무화했다. 임원진을 시작으로 책임감과 윤리의식이 높은 조직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난 7월 시행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은 책무구조도 도입에 더해 통제 의무를 위반하는 임원에 대한 제재 처분을 규정하고 있어 이른바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린다. 금융당국은 제도 시행으로 금융사고 책임을 실무자에게 떠넘기는 '꼬리 자르기'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은행권에선 금융사고 근원을 해소하지 못하는 '면피성 정책'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음은 한 은행 직원의 직언이다.
"결국은 사람 문제거든요. 금융사 직원을 채용할 때 '그런' 사람들을 배제하는 게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렵잖아요. 그러니 인사가 만사라고,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이 돈 만지는 자리에 가지 않도록 시스템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 거죠. 그다음으로는 교육을 해야겠죠. 사고를 일으키면 어떤 페널티가 주어지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해요. 형량도 높이면 좋겠어요. 돈을 숨겨 놓으면 징역을 살고 나와도 남은 돈으로 먹고살잖아요. CEO(최고경영자)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횡령은 사실 개인 일탈에 가깝잖아요. 은행에서 횡령이 발생해 CEO가 징계를 당하면 새 대표를 뽑는 데 시간과 돈이 얼마나 많이 들겠어요. 회사만 힘들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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