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텔레그램의 딜레마

김병구 논설위원
김병구 논설위원

온라인 메신저 앱, '텔레그램'. 개인정보 보호와 강력한 보안성을 내세워 출시 11년 만에 월 사용자 수가 9억5천만 명을 넘겼다. 국내에서도 월 사용자 315만 명으로, 카카오톡과 인스타그램에 이어 온라인 메신저 시장 3위다. 텔레그램은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스마트폰 등 송신자 기기에서 메시지를 보내면 즉시 암호화되고, 서버를 거쳐 수신자 기기에 도착하면 다시 암호가 풀리도록 한 기술이다. 제3자가 메시지 송신과 수신으로 이어지는 경로(서버)를 뒤져도 해독(解讀)할 수 없다는 뜻이다.

텔레그램 창시자는 1984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파벨 두로프다.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하다 20대인 2006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회사인 프콘탁테(VK)를 창립,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2013년 보안성을 강화한 텔레그램을 만들었고, 이듬해 유로마이단 혁명에 참가한 이들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러시아 정부의 압박을 피해 VK 지분을 모두 팔고 독일로 망명했다. 무정부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독일을 포함해 프랑스, 아랍에미리트(UAE) 등 4개 국적을 갖고 있다. 미혼(未婚)인 그는 2010년부터 자신의 정자를 기증, 세계 12개국에 생물학적 자녀가 1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그램을 "사용자의 사생활과 자유를 철저히 보호하는 중립적인 플랫폼"이라고 주장하는 두로프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프랑스 검찰에 전격 체포됐다. 온라인 성범죄, 마약 유통 등 각종 범죄를 방조한 혐의다. 한국 경찰도 성범죄 방조 혐의와 관련해 텔레그램 법인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텔레그램 본사는 UAE에 있지만, 데이터 서버는 각국에 분산돼 있는 데다 수시로 옮겨 정확한 소재지를 알 수 없다. 보안 측면에서 다른 온라인 메신저를 압도한다. 이런 점으로 인해 러시아, 이란, 홍콩 등 검열 및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국가에서 반정부 민주화·인권 운동의 소통 수단으로 활용되고, 우크라이나 등 분쟁 지역의 비밀 정보 송수신 도구로도 이용되고 있다. 반면 같은 특성 때문에 마약 밀매, 성범죄 콘텐츠의 공유(共有)와 확산 통로로 악용되기도 한다. 빛과 그림자란 극단의 양면성을 지닌 텔레그램의 미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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