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더 은밀하고 정교하며 강력해진 강압적 설득, 세뇌

[책] 세뇌의 역사
조엘 딤스데일 지음 / 에이도스 펴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한 사람의 생각을 조종해 그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다른 생각을 갖도록 만들수 있을까? 17세기에 스피노자는 "어떤 사람의 정신도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말했지만, 가짜뉴스와 여론조작이 넘쳐나고, 딥페이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가스라이팅과 그루밍 성범죄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는 요즘 사회를 봤다면 또 다른 평가를 내놓지 않았을까.

이 책의 저자인 조엘 딤스데일은 저명한 정신의학자로 이 책에서 인간의 정신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강압적 설득의 기술, 세뇌(brainwashing)를 다룬다. 저자는 "나는 스피노자가 옳았다고 확신하지 않는다"면서 "레닌과 파블로프가 만난 이후 100년이 흐르는 동안 스피노자의 생각을 당장에 일축할 수 있을 만한 강압적인 설득의 사례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조작하기 위한 세뇌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저자 중세시대의 종교재판부터 과학적 실험을 통해 행동을 조건화하려 했던 파블로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유령처럼 늘 따라다녔던 세뇌의 역사를 추적한다. 인간은 다른 종교적 이념을 가진 이단을 굴복시키기 위해, 새로운 인간(소비에트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포로와 범죄자들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때로는 신흥종교의 신도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강압적 설득의 기술인 세뇌를 사용했다.

이같은 실험을 CIA가 주도한 적도 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진행된 이른바 MK울트라 프로젝트 중에는 아파트 한 채를 빌려 매춘부를 고용, 고객들을 대상으로 몰래 LSD를 탄 음료를 복용하게 하거나 공중에 에어로졸 형태로 LSD를 뿌리는 실험을 진행했다. 원하는 정보를 캐내는 데 환각물질인 LSD가 효과가 있는지 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저자는 정신의학자 이웬 캐머런의 정신 조종 프로젝트, 사이비종교의 집단 자살과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들을 파헤치면서 은밀하고도 강압적인 설득의 기술이 어떻게 정교하게 다듬어져 현대의 신경과학과 가짜뉴스와 소셜 미디어까지 이어지는지를 살피면서 "인터넷은 새로운 LSD"라고 지적한다. 21세기에 더욱 발전한 기술들로 인해 더욱 정교해지고 은밀한 강압적 설득의 기술이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클립아트코리아

그 중 충격적인 수치도 있다. 2016년 미국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소셜 미디어에서 민주당 관계자들이 워싱턴 DC에 소재한 '코밋 핑퐁' 피자 가게에 근거지를 둔 아동 성매매 조직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피자 가게는 수백 건의 협박을 받았고, 한 남성은 가게로 찾아와 소총을 난사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2주 후,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힐러리 클린턴 선거 캠프 당국자들이 아동 성추행과 학대를 동반한 악마숭배에 연루됐다고 하는 소셜 미디어의 게시물을 믿느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트럼프 지지자의 46%, 심지어 클린턴 지지자의 17%가 믿는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는 사회심리학, 광고, 사회적 모델링, 그리고 사회적 도취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 가짜뉴스는 진짜 뉴스보다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지며, 정부는 여론을 조작하고 다른 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트롤군을 양성해 거짓 정보를 쏟아냄으로써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면서 "인터넷 사용으로 우리는 이제 훨씬 더 빠르게 '귀를 거짓 보고들로 틀어막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과연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정보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스스로 묻고 또 물어봐야 하는 시대다. 452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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