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양조위 톰 행크스 다음은 우디

[책]점 선 면 다음은 마음
이현호 지음 / 도마뱀 펴냄 

영화평론가 백정우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그리 받아들이는" 수도자이면서 기다림의 화신인 사물에게 말을 걸고 숭앙하고 본 받고, 기다리는 자세를 기른다는 시인 이현호. 그는 무척 외로운 사람일까,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일까, 이도저도 아니면 외로움을 잘 견디는 사람일까. 집에 찾아오는 누군가를 언제라도 환대할 준비가 된 마음을 사물에 대한 태도로 드러낸 '점 선 면 다음은 마음'. 책에는 친숙하고 보편적 공간인 집을 미분화하면서 사물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것으로부터 다른 의미를 찾으려는 작가의 섬세함이 꼭지마다 담겼다.

이현호의 산문 '점 선 면 다음은 마음'은 차마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다. 아, 물론 작가가 이 글을 본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나는 그런 의도로 쓴 게 아니야! 이미 무덤덤해졌거든? 이라며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가를 상상한다. 사물과 대화하는 시인. 떠나간 연인을 반복 소환하며 과거를 현재화시키는 남자. 중간 쯤 읽을 때까지 떠오른 이미지는 '중경삼림'의 양조위였다. 여자 친구가 떠난 뒤로 방안의 물건에게 말을 걸면서 "그녀가 떠난 후 내 방의 모든 것들이 슬퍼한다"고 혼잣말하는 홍콩경찰 663. 후반으로 갈수록 '캐스트 어웨이'에서 배구공 윌슨과 대화하며 고독을 이겨낸 톰 행크스 모습이 선명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땐 픽사의 '토이 스토리'로 마무리되었다. 이전까지 디즈니 일색의 애니메이션, 이를테면 인간 중심의 드라마를 전복하는 사물 중심의 세상 그것도 장난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을 그려냄으로써, 어른도 만화영화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애니메이션 시대를 연 그 영화 말이다. 바라보는 대상은 달라도 사소하고 자잘한 물건에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압권은 114쪽에서 시작되는 '사물들'이다. 작가는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사물을 경유하며 그리운 누군가를 호명한다. 이때 '당신'이라는 단어가 30차례나 등장한다. 그토록 부르고 싶은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한 사람의 세계를 뒤바꿔놓을 만큼 이토록 강력한 영향력이라니.

영화평론가 백정우

사물의 실패를 자신의 부주의와 미숙함으로 인지하는 작가의 시선은(적어도 책에서 드러난) 집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니까 '점 선 면 다음은 마음'은 원 테이크 영화 같은 책이다. 콘티가 나오고 몇 차례 연습과 디렉팅을 거쳐 단숨에 찍어야 하는, 아마도 작가는 그렇게 원고를 완성했을 것이다. 두 번 다시 쓰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책속에 등장하는 사물은 누구나의 집에 하나쯤 있는 것이고, 앉은 자리에서 휘익 훑어도 눈에 담길 만큼 흔한 물건들이다. 책이 보편적이고 쉽게 다가오는 건 이 때문일 터. 공감능력 없는 나조차도 고개를 주억거릴 정도였으니까.

떠난 당신을 향한 작가의 오롯함이, 사물을 꿈꾸는 시인의 마음이, 기어이 날아와 마음 한켠에 꽂힌다. 책을 읽다가 무의식적으로 쓰레기통을 흘끔거리고 책장을 바라보며 그릇을 만지작대다가 슬그머니 빨래를 꺼내 세탁기로 향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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