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스포츠 팬덤의 ‘여풍당당’

전창훈 체육부장

전창훈 체육부장
전창훈 체육부장

지하철을 타는 뚜벅이 3년 차. 그 사이 지하철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상이 있다. 저녁 시간대가 되면 둘이서 또는 삼삼오오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은 여성이나 가족 단위의 승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라팍)를 1주일에 1, 2차례 찾는다는 한 지인도 "관람석에서 보면 젊은 여성 관객이 엄청나게 늘었다"며 "친구끼리 와서 남자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즐기는 모습이 이색적"이라고 말했다.

국내 프로스포츠의 양 날개인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올 시즌 역대급 관중 수로 흥행(興行)에 성공하고 있다.

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관중 1천만 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KBO리그 누적 관중은 900만904명을 기록, 사상 첫 900만 관중을 넘어섰다. 라팍 또한 지난달 14일 구단 창단 42년 만에 처음으로 연 100만 관중을 돌파하며 프로야구 흥행을 이끌고 있다.

지난 시즌 유료 관중 집계 이후 첫 300만 관중 시대를 연 프로축구(K리그1+K리그2)도 올 시즌 역대 최소 경기(282경기) 200만 관중 돌파 기록을 세우며 여전한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DGB대구은행파크(대팍) 또한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 가고 있다.

이런 집계를 뜯어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MZ세대인 20대 여성들이 흥행 열풍의 주역이라는 점이다.

지난 7월 2~9일 KBO가 2천6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올해 신규 관람자 중 여성 비율이 48.6%나 됐다. 또한 신규 관람자 가운데 20대가 31.4%로 가장 높았고, 미혼이 절반(53.2%)을 넘었다. 해당 조사를 종합하면 올해 야구 흥행은 경기장을 처음 찾은 20대 미혼 여성이 주도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젊은 여성 관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관중 문화도 확연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승패를 떠나 응원과 직관 자체를 즐기는 문화로의 전환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팻말 등으로 당당하게 응원하거나 모두가 소리치며 응원하는 분위기를 선호하는 것이다. 또한 유니폼을 입고 직관 사진을 찍은 뒤 SNS에 올리는 등 MZ세대 특유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들고 있다.

이는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응답자의 60.0%가 '응원 팀 성적과 무관하게 야구장을 찾고 있다'고 했고, '응원 문화가 재미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49.3%에 달했다.

패션이나 유행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의 비중이 급증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최근 기아 타이거즈 응원단의 이른바 '삐끼삐끼 춤'이 온라인상에서 잇따라 패러디되면서 화제를 몰고 오자,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집중 조명하는 사례도 있었다. 야구장을 찾는 젊은 여성들이 야구 정보보다는 야구 관련 밈이나 숏폼 등 재미 위주 영상을 앞다퉈 공유하면서 벌어진 하나의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스포츠 관람에 여풍(女風)이 거세지면서 경기장에서 또 다른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은 무척 긍정적으로 보인다. 남녀 구분 없이 스포츠 관람이 생활화되면서 자연스레 '생활 속의 스포츠'로의 발전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직관 풍경에 격세지감(隔世之感)도 느끼지만, 이래저래 변화상을 지켜보는 재미도 꽤나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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