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번 큰 형(러시아)과 2번 작은 형(중국)’이 바뀐 北, 中 ‘부글부글’

러시아 맏형 등극, 우크라 침공 이후 북한과 긴밀한 협력 관계
'작은 형' 취급받는 중국, 의도적인 '북한 지우기'로 대응
76년 북중 관계 갈등 많아, 파국에는 이르지 않을 듯

숫자로 본 북러 정상회담. 연합뉴스
숫자로 본 북러 정상회담. 연합뉴스

"큰 형님 러시아, 작은 형님 중국"

#1. 북한 공식 행사에 러시아 국기가 1번, 중국은 2번. #2. 북러 주요 인사의 잦은 만남(16일 최선희 외무상 방러, 13일 쇼이구 국가안보회의 서기 방북 등), #3. 우크라 침공한 러시아에 대놓고 무기 대주는 나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한과 중국의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 관계에도 서운한 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한 집안에서도 막내가 작은 형을 큰 형처럼 여기면 분란이 생기기 마련이다.

북한은 21세기 들어 사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나라로 경제적·군사적으로 급성장한 중국은 맏형으로 여기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더 긴밀한 관계로 발전했다. 이에 중국은 섭섭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신냉전시대 구도로 다시 재편되고 있는 세계 정세 속에 북중러 트라이앵글(삼각) 동맹에 균열이 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이 사회주의 대국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속에서 '맏형'을 바꿔가며, 실리를 취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삼부자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삼부자

◆북한의 맏형 국가, 러시아→중국→러시아

제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6·25)이 발발했던 20세기에는 사회주의 국가의 맏형은 단연 러시아(옛 소련)였다. 이념의 토대가 됐던 마르크스와 레닌주의를 창시한 원조 나라인데다, 자유 진영의 맏형 미국과 대적할 만큼 군사력도 강했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북한)을 건국한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 역시 러시아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한 것으로 최근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건물 외벽에도 둘의 초상화가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렇듯 북한은 이념적으로 냉전시대를 주도했던 러시아를 사회주의의 맏형으로 받아들였고, 21세기 들어서는 러시아를 대신해 미국에 대적하는 G2 국가로 성장한 중국의 현실적 영향력 때문에 북러중이 아닌 북중러의 대외관계를 표방하며, 사실상 중국을 대외관계 1순위 국가로 여겼다.

이렇듯 현실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 자연스레 바뀐 맏형(중국)인데, 또다시 원조 맏형(러시아)이 재등장하는 바람에 그 속에서 미묘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중국이 더 크게 삐져서, 양국의 우호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형국이다.

중국이 이달 4일부터 8일까지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9차 동방경제포럼(EEF)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한정 국가부주석을 보냈다. 연합뉴스
중국이 이달 4일부터 8일까지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9차 동방경제포럼(EEF)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한정 국가부주석을 보냈다. 연합뉴스

◆"러시아 관계가 더 중요" 中 자극하는 北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과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와 관계가 북한의 최우선 과제"라고 발언하며 중국을 자극했고, 올해 주중 북한대사관 외교관들에게 "중국과 마찰을 두려워하지 말고 업무를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또, 8·15 광복절에도 김정은-푸틴은 축전을 교환했지만, 시진핑-김정은 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에 더해, 북한은 화교(華僑)의 거주지 이탈을 제한할 뿐 아니라 장마당에서 유통되던 중국 위안(元)화 사용도 제한하고, 중국 영화 시청도 통제한다고 한다. 중국 위성을 이용했던 TV송출도 러시아 위성으로 전환했다고도 한다. 이는 중국 입장에서는 의도적인 '중국 지우기'로 볼 수도 있다.

이런 북한의 도발에 중국이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중국은 7월 27일 북한의 71주년 전승절(정전협정체결일) 열병식에 주북한 중국대사를 참석시키지 않았다. 또, 2018년 시진핑-김정은 정상회담 시 다렌(大連) 방추이다오(棒槌島) 해변 산책 기념으로 제작한 발자국 동판도 철거했다. 북한 노동자 비자 연장 요청도 거부하고 이들을 귀국시키는 등 '북한 지우기'로 맞서고 있다.

한중일 VS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 현황. 연합뉴스
한중일 VS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 현황. 연합뉴스

◆북중 관계, 파국에는 이르지 않을 것

'혈맹'(6·25전쟁 당시 연합군 공세에 밀리다 중공군 개입 인해전술로 38선까지 회복)이라는 북중 관계는 76년의 역사에 늘 순탄치는 않았다. 상호 불신 속에 갈등도 빈번했다. 김일성은 6·25 남침을 마오쩌둥에게 통보하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격분했고, '중국과 북한의 연합군' 지휘권 문제와 38선 이남으로 진격 문제를 두고도 갈등했다가 스탈린의 중재로 타협이 이뤄졌다고 한다.

한중 수교 당시에도 북중 갈등이 있었다. 북한은 자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수교한 덩샤오핑을 불신했고, 핵개발에 반대하는 중국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특히, UN의 대북제재에 참여하는 중국에 분노했고, 황장엽 노동당 비서를 한국에 인도했을 때도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막무가내로 나오는 북한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국경을 접한 혈맹 국가인데다, 미국을 견제하고 맞서기 위해서도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조율하고 있다. 이정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면서, 존재감을 키울 뿐 아니라 현실적인 국가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며 "중국과 북한과의 특수성을 고려해, 다소 섭섭하더라도 갈등을 키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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