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 한동훈 대표의 '웃픈' 반도체 헤프닝, 알고 보니…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뿌리는 구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3일 구미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구미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조규덕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3일 구미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구미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조규덕 기자
조규덕 경북부 기자
조규덕 경북부 기자

최근 구미에서 열린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구미의 경제적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옆에 있던 삼성전자 사장 출신 고동진 의원에게 한 마디 던졌다.

"삼성의 반도체 산업이 시작된 곳이 바로 구미 아닙니까?"라며 동의를 구한 것. 하지만 옆에 있던 고 의원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기흥…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정정했다.

좌중은 웃음바다가 됐고, 한 대표도 멋쩍게 웃으며 "삼성이 한 단계 올라서는 데 구미가 큰 역할을 했다"라고 말하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웃음으로 끝난 에피소드였지만, 알고 보면 한 대표의 말이 틀리지만은 않았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산업은 1974년 경기도 기흥에서 시작됐지만,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뿌리는 구미에 있기 때문이다.

구미는 1969년, 반도체 전문기업 KEC가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자리 잡으면서 대한민국 반도체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KEC는 일본에서 돈을 번 창업주 곽태석 회장이 고향 구미에 세운 회사다. 당시에는 일본 기술에 의존하던 시절이었지만, KEC는 스스로의 힘으로 반도체 기술을 국산화하기 위해 구미에서 고군분투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KEC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반도체 기술의 국산화를 이끌어왔다. 현재는 전력반도체를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며 현대차·GM·테슬라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그리고 구미에는 반도체 부품을 생산하며 세계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원익큐엔씨, SK실트론, 매그나칩반도체 등 쟁쟁한 반도체 기업이 336곳이나 있다. 인수·합병 등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삼성반도체통신·대한반도체·현대반도체 같은 반도체 기업도 많다.

이들 기업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기틀을 다졌고, 구미는 반도체의 도시로 자리 잡았다.

결국 삼성전자의 반도체가 시작된 곳은 기흥일지 몰라도,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진정한 시작은 구미에서 비롯된 셈이다. 구미는 반도체 산업을 통해 국가 경제에 큰 기여를 해왔고, 지금도 반도체 소재부품 특화단지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대표는 이번 간담회에서 구미를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심장'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또 "정치 영역에서는 괜한 허세로 뒷다리를 잡지 않고, 산업계에 진짜 필요한 인프라를 한발 앞서서 제공하겠다"고 강하게 말했다.

구미산단의 자랑스러운 반도체 역사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한 대표의 이러한 약속이 자신의 말처럼 허세로 끝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구미가 반도체 산업의 진정한 심장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지원과 인프라 확충이 필수적이다.

한 대표가 말한 대로 구미는 반도체 소부장 분야에서 특화된 만큼, 수도권 집중이라는 장애물을 넘고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도움을 제공 받아야 할 시점이다.

구미는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도시다. 이제, 한동훈 대표의 약속이 실현돼 그 미래도 이끌어가기를 기대해본다.

한동훈 대표의 '웃픈'(웃기면서 슬픈) 발언 뒤에 숨겨진 구미의 진짜 반도체 역사는 이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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