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인이 '단 한 편의 친일 문장도 쓰지 않은 지조의 작가' 흑구(黑鷗·검갈매기) 한세광(1909∼1979)이 일제감점기에 미국 유학 중 영어시로 조선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작품을 95년 만에 발굴해 최초로 소개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한명수는 최근 '흑구 한세광의 영시들'을 출판했다. 한세광은 본명보다 흑구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평양 출신인 흑구 한세광은 1926년 '진생'에 시 '거룩한 새벽하늘'과 '밤거리'를 발표한 후 1928년 동아일보에 '인력거꾼'을 발표하는 등 창작활동을 했다.
그는 미국 유학을 거쳐 해방 후 1948년 포항에 정착해 포항수산초급대학(현 포항대학교) 교수로 지내며 타계할 때까지 영미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면서 수필은 물론이고 민족시인으로 시와 소설, 평론,논문,번역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문인이다.
한명수는 한흑구 선생을 생전에 뵌 적은 없지만 자신의 은사인 아동문학가 김녹촌(1927~2012년) 선생으로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한명수는 30여년 전 천주교대구대교구에서 교구100주년(2011년)을 앞두고 교회사 연구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중 정지용,김영랑,이육사 등 한국 문단의 여러 문인들의 자료를 접할 수 있었고 나중에 다시 볼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띠지'를 붙였다.
그는 천주교대구대교구 100년사가 출간된 이후 예전에 정리해 두었던 문인들에 대한 '띠지'를 들춰보았다. 이미 정지용,김영랑, 이육사 등에 대한 선행 연구가 많았다. 하지만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왔던 '나무','보리' 등 수필을 썼던 한흑구에 대한 연구는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흑구 선생에 대한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명수는 흑구 선생이 시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민중환 교수의 '한흑구 문학선집'(2009년)을 통해서다. 이후 이 내용을 다시 정리해 2014년 '한흑구 시선집'이 나온 이후 흑구가 시를 썼다는 사실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명수는 2019년 '한흑구 시선집'(마중문학사)을 펴냈다. 그는 흑구 선생이 미국 유학(1929~1934년)을 하다 어머니의 병보를 받고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에 앞서 미주 지역의 한인단체들이 통합해 결성한 국민회 기관지인 '신한민보'에 '흑구시집 편초'라는 제목의 기사에 유학생활 5년 동안 약 200편의 시와 100편에 달하는 영어시를 썼다고 스스로 밝힌 것에 주목했다.
하지만 흑구 선생이 귀국할 때 우리들로 쓴 약 200편의 시와 영어로 쓴 100편의 시를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 전쟁의 격동의 시간을 거치면서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다.
한명수는 2019년 '한흑구 시선집'을 펴낸 후 흑구 선생의 쓴 영시를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미국 국회도서관과 자료를 찾고, 흑구가 유학했던 미국 시카고의 노스 파크(North Park)대학 도서관의 자료를 검색하고 관계자와 연락을 통해 마침내 흑구 선생이 95년 전인 1929년 10월 25일 'North Park College News'에 영시 'You And I'(너와 나) 등 6편을 발표한 것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했다.
또 흑구는 이 대학 시인클럽 창립회원으로 참가해 활동한 동인지 '페가수스'(Pegasus),한국학생회보(The Korean Student Bulletin)에 실린 모두 15편의 창작시와 영역시(英譯詩)로 구분해 소개하고, 영시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한 편의 영역산문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찾아내고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는 93쪽 분량의 '흑구 한세광의 영시들' 책을 최근 펴냈다.
한명수는 "현재까지 보고된 자료들을 살펴볼 때 우리나라에서 흑구 선생의 영시를 소개하는 '흑구 한세광의 영시들'이 처음인 여겨진다"면서 "영어시를 지어 조선심(朝鮮心)을 표현해 보고자 했던 흑구 선생의 작품을 감상함과 동시에 더 많이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누리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흑구는 일제의 압박과 박해를 견디며,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단 한 편의 친일 문장도 남기 않았고 시 한 줄에도 조국을 생각했던 민족시인이요 우국시인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흑구 선생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알고 더 많이 연구해 그의 업적과 가치가 우리 문단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대접받아 올바른 위치를 찾아 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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