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료계가 추석연휴 의료대란을 예측하고 있는 이유는 명절 연휴는 대부분의 병의원들이 문을 닫는데다 야외활동이 많아 중상 환자들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추석연휴에는 환자가 평시 대비 1.6배 증가한다고 밝힐 정도로 환자 발생 빈도가 늘어난다. 환자 수 자체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현재 의료공백 사태에서는 배후진료과의 지원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
◆ 추석연휴, 각종 사고로 응급실 북새통
추석 전 벌초하는 과정에서는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최근 5년(2019∼2023년)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예초기 안전사고는 총 405건이며, 벌초와 풀베기가 한창인 9월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 10건 중 8건 정도가 예초기 날에 피부가 찢어지거나 베이는 '열상·절상'이었고, 발생 건수는 적지만 골절·절단·안구손상 등 상해가 큰 사고도 있었다.
또 최근 5년간 벌에 쏘여 치료받은 환자 9만2천660명 중 8월(3만2천998명)과 9월(2만283명)에 환자가 58%를 차지할 정도다. 이 때가 추석 전 벌초 과정에서 벌집을 건드리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가릴 것 없이 응급실은 환자들로 가득찰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추석 연휴에는 1차의료기관인 동네 병·의원이 휴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응급실은 평소보다 환자가 더 몰리게 된다.
◆ 배후진료과 없으면 응급실도 무용지물
김창호 칠곡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중증 응급환자가 응급실로 실려오면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치료는 전체 치료의 30% 수준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인 즉슨, 응급환자가 실려왔을 때 응급실에서는 배후진료과 담당 의료진이 환자를 맡기 전까지 긴급한 상황을 넘기고 연명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치료가 가능하고 나머지는 결국 배후진료과에서 환자를 맡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재는 의료공백으로 인해 배후진료과 조차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 교수는 "경북의 권역응급센터조차도 배후진료과 의사가 당직 오프한 상황에 뒤를 받쳐줄 의사가 없으니 우리 병원으로 달려왔다"며 "우리 병원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위기감이 많다"고 말했다.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신경외과 관련 응급환자를 받을 수 있는지 연락이 오지만 돌려보내는 실정이다. 당장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봐줄 신경외과 의료진이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의료진 A씨는 "갑자기 경련을 일으킨 어린이를 싣고 구급대가 밀고 들어와도 소아신경과 담당의가 없으면 이 아이를 치료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의료공백 이후 응급실 상황은 마치 1980년대 모습과 똑같다"고 말했다.
◆ 동네 병·의원 추석연휴 진료 동참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의료가 당면할 문제가 가시화되자 정부는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올해 설 연휴보다 400여곳 더 많은 4천곳 이상의 당직 병·의원을 지정할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응급·당직의료기관이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업무정지 15일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의협을 포함한 개원의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 발표 직후 의협은 의협은 "정부가 부당한 노동을 강요하는 데 엄중히 경고한다"며 "모든 법적 조치를 다 해 회원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원의들도 당직 병·의원 지정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정부의 지원으로는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는데 누가 병원 문을 마음 편하게 열겠느냐는 것이다.
대구 시내 한 개원의는 "환자가 있든 없든 근무하는 간호사나 지원 인력들에게 임금을 줘야 하는데다, 그들 조차도 추석 때 근무하기를 원치 않아한다"며 "지난 명절때는 임시직을 고용해야 했을 정도로 명절에 문 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전문의 중심병원 돼도 문제는 지속될 것
정부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만들면서 경증 환자는 받지 않고 중증 환자만 받게 하겠다는 정책을 내 놨지만 이마저도 응급의료에는 적용하기 힘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창호 칠곡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운영하려면 현재 전공의 인력을 모두 전문의로 대체해야 할텐데 이들에 대한 임금이나 처우를 감당할 수 있는 병원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응급의학과를 포함한 필수의료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이라는 게 응급실 의료진들이 제시하는 해법이다. 대구지역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응급실 인력을 보강한다는 건 결국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며 "응급실 뿐만 아니라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정책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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