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학 속 호모에스테티쿠스] <43> 뒤라스의 ‘연인’: 사랑, 비규정성의 아름다움

이경규 계명대 교수

영화
영화 '연인' 포스터
이경규 교수
이경규 교수

뒤라스의 '연인'은 책보다 영화로 유명해진 작품이다. 드물지 않은 경우다. 특히 15세 소녀(제인 마치)의 파격적인 정사 장면이 인구에 회자한 덕분이기도 하다. 눈에 직접 어필하는 영상 매체의 힘이다. 그런데 '연인'은 영화가 소설의 의도와 분위기를 잘 반영했다는 평가가 많다. 감독(장자크 아노)의 뒤라스 이해가 남달랐겠지만 뒤라스의 글쓰기가 이미 영화의 메커니즘에 접근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인'은 작가의 과거사를 이야기하지만 그게 사실인지 알 수 없고 그나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질서 있게 전개되지도 않는다. 우리 뇌의 기억이 그렇듯이 사건의 전후 관계가 뒤죽박죽이다. 20년대 말에서 40년대 말까지 걸친 긴 이야기이지만 장(章)이나 소제목 같은 구분도 없다. 머릿속에 불쑥불쑥 떠오르는 기억의 장면을 사진 찍듯이 이미지화해 놓았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용어를 끌어올 수도 있지만 뒤라스는 그런 회상 장면을 '영상'이라고 한다. 소설의 핵심 영상은 당연히 프랑스 소녀와 중국인 남자와의 사랑이다.

종종 나는 나 혼자만 간직하고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말한 적이 없는 이런 영상을 떠올려 보곤 한다. 그 영상은 황홀한 기운에 둘러싸인 채 항상 같은 침묵 속에서 펼쳐진다.

'영상'으로 번역했지만 불어는 '이미지(image)'다. 영상보다 좀 더 포괄적인 말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Imago Dei)' 지었다고 할 때의 단어와 어원이 같다. 외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0세의 여성 작가가 15세 때 12살 연상의 중국 남자와 벌인 연애가 '황홀한 기운에 싸여' 있다고 회상할 때, 그것은 외적 현상을 넘어 신비로운 이미지다. 단어라는 벽돌을 질서정연하게 쌓아 올리는 종래의 글쓰기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새로운 글쓰기(누보로망)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연인'은 사랑이라는 말이나 개념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사랑의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모험적인 소설이다. 최소한 화자이자 주인공인 소녀의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 우선, 내밀한 두 남녀의 이야기인데 이름이 없다. 여자는 '나'나 '소녀'로 나오고 남자는 '중국인'이나 '연인'으로 불린다. 인간 사회가 그렇듯이 이름만큼 규정하고 규제하기 좋은 틀은 없다. 이름으로 규정되지 않는 것은 자연이다. 프랑스 소녀와 중국 남자가 프랑스도 중국도 아닌 베트남 메콩강에서 처음 만날 때, 강이 그러한 비규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안개가 뿌옇게 서린 강 위의 태양, 그 태양의 열기 속에 강기슭은 지워져 보이지 않는다. 강은 수평선과 맞닿아 버린 것처럼 보인다. 강은 유유히 흐른다.

배 위에서 바라본 안개 서린 강은 경계 없는 이미지로만 존재한다. 기슭도 없고 먼데 수면은 하늘과 붙어 있다. 옆에서는 황토물만 유유히 흐른다. 소녀의 어머니는 이 강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라고 한다. 이제 강의 비규정성은 사람에게로 넘어온다. 소녀가 연인의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섹스를 할 때, 그는 '마르고 털도 근육도 없는 놀랄 만큼 부드러운', 거의 무성의 몸이다. 게다가 12살이나 많은 남자가 소녀 앞에서 우는 게 일상이다. 반면에 남성용 중절모를 쓴 소녀는 카리스마가 넘친다. 여기에 남과 여라는 규정은 통하지 않는다. 소녀는 이 부드러운 남자로부터 아이 셋을 낳은 어머니도 모르는 육체의 향락을 만끽한다. 그것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는' 경험이고 '자신이 바라던 것을 넘어 육체의 숙명(body's destiny)과 일치하는 곳까지 가는' 경지다. 뒤라스는 이 쾌락을 형체 없는 바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불어로 대화를 하지만 꼭 필요한 말 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갑부의 아들인 남자는 파리에서 몇 년 호화 유학을 했지만 공부는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에 베트남에서 태어나 베트남에서 자란 소녀는 베트남어가 모국어에 가깝다. 제 삼국에서 제 삼의 언어로 어떤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만남은 거의 육체적인 만남으로 언어가 필요 없다. 남자는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하지만 소녀는 사랑이라는 말을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여자가 과연 사랑도 없이 1년 반 동안 그렇게 치열하고 뜨겁게 관계할 수 있을까? 대체 소녀의 진심은 뭘까? 독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지점이다. 한번은 남자가 돈 때문에 자기를 만나지 않느냐고 하자 소녀는, '돈과 함께 당신을 갈망한다.'고 말한다.

소녀가 마침내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연인과 헤어지고 프랑스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갑판 위로 쇼팽의 왈츠가 들려오던 밤의 일이다.

문득 그녀는 자신이 콜랑의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랑은 모래 속으로 스며드는 물처럼 스캔들 속으로 잠식했을 뿐이다. 쇼팽의 음악이 바다를 가로질러 울려 퍼지는 지금에야 그것을 발견했다.

돈과 쾌락이 지배한 관계라고 믿었던 만남이 배 위에서 쇼팽의 음악을 듣는 순간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소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연인을 그리워한다. 음악은 비밀스러운 '하늘의 지령(heavenly injunction)'인 양 소녀의 마음을 처연하게 만든다. 한순간 견고했던 몸과 마음의 구분이 사라진다. 이렇듯 '연인'은 규정되지 않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그려보려는 실험적 소설이다. 형체 없는 강물·바다·음악이 배경이 되어 그것을 오롯이 떠받치고 있다.

파리에 온 소녀는 몇 년 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이혼한다. 책도 몇 권 출판해 작가의 꿈을 이룬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파리에 온 중국 연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온다. 자신의 사랑은 예전과 똑같고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자의 입에서는 끝내 사랑이 언표되지 않는다.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사랑은 언표되는 순간 신비한 이미지는 사라질지 모른다.

'연인'은 사랑 외에도 가족·제국주의·식민지 같은 거대 주제를 많이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러브스토리로 보면 안 된다는 논자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일반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남녀상열지사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것은 여느 러브스토리와는 다른 독특한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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