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전기 보급이 시작된 1961년 이후 12년간은 전기를 많이 쓸수록 값이 싸지는 '체감(遞減) 요금제'가 운영됐다. 그런데 1973년 10월부터 정반대인 '체증(遞增) 요금제', 요즘 말로 누진 요금제가 시작됐다. 전기가 넘쳐나 많이 쓰라고 장려하던 시기가 무색할 만큼 갑작스레 징벌적 누진제가 시작된 계기는 석유 파동이다. 전기 부족으로 공장을 멈출 수는 없으니 일반 가정에서 전기를 아끼도록 강제하는 동시에 가전제품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서민층을 배려하자는 취지였다. 그렇다고 해도 당시 누진율, 즉 누진 구간(3단계)에 따른 최고와 최저 요금 비율은 1.6배에 불과했다. 이후 누진율은 국제유가 추이와 전력 수급 여건에 따라 등락을 거듭했다. 한때 1979년 2차 석유 파동 당시 12단계 19.7배까지 커졌던 누진율은 여러 차례 조정을 거쳐 2016년엔 종전 6단계 11.7배를 3단계 3배수로 완화하기에 이르렀다. 전기 요금 폭탄 민원이 들끓었고 과거처럼 저소득층이 전기를 적게 소비하는 것도 아니어서 소득재분배 효과도 없었기 때문이다.
역대 최장 열대야 기록을 세운 지난 8월 주택 전기 요금이 평균 13% 올라서 고지된다. 한국전력이 밝힌 8월 가구당 평균 전기 사용량은 363㎾h(킬로와트시)로, 지난해 8월보다 9% 증가했다. 사용량보다 요금의 증가 폭이 더 큰 이유는 누진제 때문이다. 기본요금뿐 아니라 ㎾h당 요금도 비싸지는 누진 구간에 포함된 가구가 더 늘었다는 의미다. 13%는 평균 인상률일 뿐 가족 수에 따라 체감하는 전기료 상승 부담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폭염이 전기 요금 부담을 가중시켰고, 그로 인해 전기 요금 '정상화' 시기도 다시 조정될 가능성이 대두(擡頭)되고 있다.
한국전력의 부채는 2020년 132조5천억원에서 올 상반기 202조8천900억원까지 꾸준히 늘고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은 급등했는데 물가 안정 명목으로 2021∼2023년 원가보다 싸게 전기를 공급해서다. 전기 요금 인상으로 지난해 3분기부터 팔수록 손해 보는 구조에서는 벗어났지만 빚을 갚기에는 역부족이다. 대규모 정전(停電) 사태를 걱정하며 가정용 전기라도 아끼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올여름엔 전기 부족 얘기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비싼 청구서가 날아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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