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의사 단체는 조건 걸지 말고 ‘여야의정 협의체’ 동참하라

'여야의정(與野醫政) 협의체' 출범이 의사 단체의 과도한 전제 조건 요구로 난항을 겪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가 모처럼 한목소리로 의대 증원(增員)과 의료 개혁 문제를 논의할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키로 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 단체들은 '대통령 사과' '2025·26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 등을 협의체 참여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정부는 또 한발 물러났지만, 의사 단체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정부에 '백기 투항'(白旗投降)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주 국민의힘이 의료 공백(空白) 해결을 위해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고, 더불어민주당과 대통령실·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특히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의료계에서 합리적 안을 제시하면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을 원점(原點) 재검토할 수 있다"고 유연(柔軟)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의협은 "협의체에 의료계가 참여하기 위해서는 2025·26학년도 의대 증원 계획을 백지화하고, 2027학년도 정원부터 재논의해야 한다"며 버티고 있다. 나아가 의협은 9일 "의대 증원 백지화가 전공의 복귀를 위한 최소 조건"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일부 지역 의사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막말과 실언(失言)을 일삼은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박민수 2차관과 장상윤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의 즉각 파면"과 같은 강경한 발언을 쏟아 냈다.

2025년 증원 계획 백지화는 현실성 없는 요구다. 39개 의대를 포함한 전국 대학들이 9일 2025학년도 수시 원서 접수를 시작했다. 대학별로 정원이 확정되고 입시 요강(入試要綱)이 발표된 시점에서 정원 재조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부족한 필수 분야 및 지역 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의대 증원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책이다. 지난 6월 대법원은 의대 증원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執行停止) 신청을 기각해 정부의 손을 들어 줬다. 지난 1일 열린 회담에서 한동훈·이재명 여야 대표도 '내년도 의대 증원 유지'에 인식을 같이했다. 따라서 의사 단체의 2025년 증원 백지화 요구는 국민의 뜻과 여야 합의, 법원의 결정을 깡그리 무시하는 직역(職域) 이기주의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로 만나 '여야의정 협의체'에 의료계가 참여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의사 단체들이 전제 조건 없이 논의 테이블에 동참할 것을 주문하기로 공동 보조(步調)를 취한 것이다. 협의체 출범의 핵심은 의사 단체의 참여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여야정의 합리적인 단일안을 미리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협상안을 보고 대화 여부를 결정하겠다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나. 의사 사회 내부에서 '현실을 인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의협은 이런 여론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의사 단체가 국민을 생각한다면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협의체에서 의대 증원, 의료 수가, 전공의 처우 등의 문제를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논의하면 된다. 첨예한 문제의 경우 여야 정치권이 정부와 의료계를 중재할 수도 있다. 의료 공백이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 수술·진료 지연으로 국민들은 고통받고 있다. 병원에 남은 의료진은 지칠 대로 지쳤다. 대학병원들은 진료 축소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협의체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의사 단체의 대승적(大乘的)인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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