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사유변] 몰락하는 K-의료, 결자해지가 필요한 시점

곽재혁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곽재혁신경과의원 원장)
곽재혁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곽재혁신경과의원 원장)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경증 환자들로 인해 응급실 진료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경증 환자들의 대형병원 응급실을 자제해 달라고 언급했다. 또 본인이 응급실에 전화로 경·중증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 자체가 경증이기 때문에 응급실에 오지 말아 달라고 설명했다.

이를 듣고는 정말 한국 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 고위 관료가 한 말인지 의심이 들었다. 의사가 진찰을 해도 경증인지 중증인지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CT나 MRI를 촬영을 해야 진단이 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주일 전에 진료를 보는데 한 환자로부터 전화상담이 왔다. 과거에 뇌경색으로 진단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는 분인데 당일 점심때부터 어지럼증과 함께 다리에 힘이 빠지고 걷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증상이 발생한지 3시간정도 밖에 지나지 않아서 빨리 응급실에 가서 뇌 MRI를 촬영하고 뇌경색으로 진단이 되면 막힌 혈관을 뚫는 주사제나 시술이 필요하다고 설명을 했고 바로 택시를 타고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을 방문하라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환자는 뇌 MRI를 촬영을 했고 탈수로 인한 일시적인 어지럼증과 보행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퇴원했다. 이 환자는 운이 좋았지만 모든 환자가 이처럼 결과가 좋을 수는 없다.

뇌경색은 일분 일초가 시급한 질환이다. 4~5시간 안에 대학병원 응급실에 방문하면 혈전 용해제를 투여할 수 있고 빨리 약제를 투여할수록 예후가 좋기 때문이다. 반대로 치료가 늦어지면 증상이 진행되기도 해 자칫 장애 또는 사망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뇌졸중 이외에는 심근경색등 여러 중증 질환들이 처음에는 증상이 가볍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자칫 진단이 늦어지면 치명적인 결과를 도래할 수 있기에 증상이 경미하더라도 중증 질환이 의심될 때는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환자들이 대학병원 응급실을 방문하는 것이다. 박 차관의 말대로 의식이 없어야지만 응급실에 방문하라는 말이 얼마나 어불성설이고 무책임한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환자처럼 중증 질환이 의심되었지만 검사 결과에서 경증으로 판명이 나면 추석 때부터는 진료비의 9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해서 진료비 폭탄을 맞게 될 것이다.

4년 전 이국종 교수는 "복지부는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거짓말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2024년 의료 대란이 발생한 지금도 현실이 되고 있다. 1월 말 복지부는 아직 의대증원 시기 및 규모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언론을 통해 알렸지만 일주일 뒤에 2천명 증원 확정과 함께 의료계와 충분히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청문회를 보면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는 없었고 회의록도 대부분 파기한 상태였다. 또한, 의대 정원 배정위원회도 비밀로 부치고 있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의대증원을 결정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결코 의료비나 건강보험료는 증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당연지정제'라 모든 의료기관은 예외 없이 모든 건강보험 환자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건강보험 수가는 수요-공급이라는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다. 시장가격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의 수가를 국가가 결정한다. 결국 의료기관은 박리 다매를 통해 생존해야 한다. 의료기관은 비용에 비해 수가가 너무 낮은 전문과목은 진료를 줄여서 손실을 최소화하고 비보험 진료를 섞어야만 경영이 가능하다. 이것이 필수 의료인력의 부족을 야기하는 것이다. 결국에 우리나라는 의사수의 부족이 아니라 정부의 저수가 정책으로 인한 필수 의사의 부족이 야기된 것이다. 의사수가 늘어나게 되어 박리다매가 어려워지면 이는 곧 환자당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건보공단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 건보급여비 총액은 의사 수 현행 유지 시 333조원이지만 의사 수를 1천명 증원 시 17조원, 3천명 증원시 52조원이 더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가가 추진하는 의료 정책은 K-의료의 몰락과 함께 국민들의 의료비 폭탄과 의료 이용의 제한을 야기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는 벌써 시작되고 있다. 권력자의 아집으로 인해 국민의 건강권이 벼랑 끝에 놓여 있다. 결자해지(結者解之)가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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