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암 수술 방치에다 응급실 의사 감시·겁박하는 의사 집단

암 환자들이 의료 공백 장기화의 가장 큰 희생양(犧牲羊)이 되고 있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이후 의료진 부족으로 전국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급)의 암 수술 건수가 크게 감소한 것이다. 지난해 암 수술 건수를 기준으로 볼 때, 지난 2월 의료 공백 사태 이후 5개월 동안 1만1천 명 이상의 환자들이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와중에 '응급실 부역(賦役)'이라며 응급실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블랙리스트' 게시물이 등장해 공분(公憤)을 사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2~6월 전국 상급종합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은 환자는 모두 5만7천244명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6만8천425명)보다 16.3%(1만1천181명) 줄어든 수치다. 특히 암 환자들이 집중(集中)되는 '빅5 병원'(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의 암 수술 감소 폭은 더 컸다. 올해 2~6월 이들 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은 환자는 2만53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8천924명)보다 29%(8천392명) 감소했다.

한시가 급한 암 환자와 가족들은 수술 지연(遲延)으로 피를 말리고 있다. 수술을 하루라도 빨리 받을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여러 대학병원을 떠돌고 있다. 대학병원에서 수술 일정을 잡지 못한 일부 암 환자들은 불안한 마음에 2차병원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암 환자 단체는 "1년마다 암 환자 8만 명가량이 사망하는 상황에서 지난 5개월간 수술받은 환자가 대폭 줄었다는 것은 의료인들이 환자의 목숨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울분(鬱憤)을 터트리고 있다. 환자 가족이 아니어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더욱 국민의 분통(憤痛)을 터지게 하는 것은 악의적인 '응급실 부역' 블랙리스트가 돌고 있다는 점이다. '감사한 의사 명단'이란 이름의 인터넷 사이트에 개설된 '응급실 부역' 코너에 병원별 응급실 근무 인원이 일부 근무자 명단과 함께 게시됐다. '감사하다'는 표현과 달리, 실제로는 응급실 근무자들을 조롱하고 낙인(烙印)찍기 위해 이름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 사이트와 관련해 스토킹 처벌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월 전공의 이탈 이후 블랙리스트 논란은 수차례 반복됐다. 3월에는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병원에 남은 전공의 실명이 담긴 '참의사 리스트'가 공유됐다. 경찰은 리스트 게시자 5명을 특정해 검찰에 송치(送致)했다. 7월에도 온라인 의사 커뮤니티에 '병원 복귀 전공의 현황을 제보받는다'는 글이 게시됐고, 개인 신상이 포함된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암 수술이 축소되고, 추석 전 응급의료 대란이 우려되는데도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 단체들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환자가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제때 치료받지 못해 숨지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도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돌아올 기미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을 떠난 동료들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의사들을 감시하고 겁박하는 행태는 의사 윤리 위반이며 범죄행위다. 여야 정치권과 정부가 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여야의정(與野醫政)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의사 단체들은 '대통령 사과' '2025·26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 등 전제 조건을 내걸며 꿈쩍도 않고 있다. 국민들은 7개월째 고통을 참아가며,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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