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대출 규제 엇박자, 부동산 정책의 근간이 흔들린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지난 8월 2일 60억원에 팔렸다. 3.3㎡당 1억7천600만원 선으로, '국민 평형' 역대 최고가다. 같은 단지, 같은 면적이 지난 7월 18일 55억원에 거래됐는데, 20여 일 만에 5억원 올랐다. 국민 평형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지경이다. 고금리, 고물가 여파로 실질소득이 줄어든 서민들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내수 부진에 소상공인들은 하루가 멀다고 폐업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다. 8월 지방 아파트 입주율(入住率)은 지난달보다 10%포인트(p)가량 낮아졌다. 미입주 원인 중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잔금을 못 낸 경우가 약 40%로 가장 많았다. 잔금 대출을 받지 못한 경우도 25%가 넘었다. 주택 경기는 달아오르는데 대출 규제로 발목이 묶인 서울과 달리 지방은 아파트 거래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아 돈이 돌지 않고 있다. 미분양의 무덤인 지방은 서울과는 전혀 딴판인데도 천편일률적인 규제를 적용한 탓이다. 지방 아파트 거래 활성화 대책도 없다.

다만 은행권의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가산금리 1.2%p를 적용하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가 이달부터 시행되면서 서울 집값도 일단 주춤한 모양새다. 서울의 아파트 매물은 지난달에 비해 3.6%가량 늘었고, 가격 상승폭도 3주 연속 줄었다. 국토교통부는 8·8 주택공급 확대 방안 발표 효과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정책 발표 이후에도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했다. 역대 최고가 기록 경쟁이라도 벌일 판이다. 게다가 국토부 정책 효과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회의적이다. 중장기 공급 대책을 나열했을 뿐 단기 공급 대책이 없는 탓에 일정 시기가 지나면 오히려 눌렸던 기대수요까지 가세(加勢)해 가격이 더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뚜렷한 공급 대책 없이 대출 규제만으로는 일정 부분 이상의 가격 억제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출 규제마저 엇박자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무리한 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킨다" "은행 자율성 측면에서 개입을 적게 했지만, 앞으로는 부동산 상황에 비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식의 강도 높은 발언을 통해 금리 인상으로 배만 불린 은행들을 대놓고 공격했다. 이후 5대 시중은행이 가계대출 축소에 나서면서 관치(官治)금융과 실수요자 피해 비난이 일자 지난 6일 김병환 금융위원장, 9일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금융기관의 자율적 리스크 관리가 정부 입장"이라고 해명했고, 결국 10일 은행장들을 만난 이 금감원장도 사과 발언을 했다. 이러니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해석이 더 어려워졌다. 가계대출 증가는 심각한데 수익을 좇는 은행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정부가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주면서 규제에 나선 줄 알았는데, 다시 '자율적 관리'를 외친다. 잘되면 '내 덕', 잘못 되면 '네 탓'으로 들릴 만한 언행들이다. 집값 폭등(暴騰)으로 이전 정부가 민심을 잃은 지 3년도 채 안 됐다. 부동산 파국의 전철(前轍)을 되풀이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집값을 못 잡으면 민심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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