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지역 관련 우울한 통계가 차고 넘치는 요즘이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통계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지역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보고자, 지난달 대구의 21~26살 사이 남녀 3명씩 모두 6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학생, 무직자, 직장인 등으로 직업군이 다양했고, 자라온 성장 배경과 이에 따른 가치관 또한 가지각색이었다.
취재진 또한 함께 고민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기사로 엮었다. 이름은 가명으로 표시했다. ▷강혜진(26·여) 대학원생 ▷김수영(24·남) 대학생(공기업 취업 목표) ▷이동민(25·남) 무직 ▷정우연(24·여) 대학생(최근 편입 성공) ▷차정원(24·남) 대학생(언론사 취업 목표) ▷홍다겸(21·여) 직장인이다.
◆성차별 경험·젠더갈등…경험·우려
20대 청년들 사이에서 가장 민감하다고 알려진 '성차별', '젠더갈등'에 대해선 청년마다 다양한 경험과 생각이 존재했다.
▶강혜진=최근에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예쁜 아가씨가 타니까 좋은 향기가 난다"고 말해 당황했다. 기사는 내게 이것저것 묻다가 내가 대학원생인 걸 알게 되자 "여자가 너무 배우면 자기 기준에 맞는 남자를 못 찾아서 결혼을 못 한다"라고 해 굉장히 불쾌했다. 또 '젠더갈등'은 존재하는 성차별을 축소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젠더갈등'을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기보다 미디어를 통해 접했다는 대답이 많았다. 미디어와 정치권에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이동민=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응과 정서가 미디어에서 과잉 대표된다고 본다. 커뮤니티의 자극적인 의견과 분풀이 등을 미디어에서 조회수 올리기용으로 다루는 것 같다. 페미니즘을 단순히 여성의 편만 드는 것으로 오해하도록 하는 단편적인 보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수영=젠더갈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일부 커뮤니티 의견을 전체의 생각인 것처럼 나타내는 것 같다. 가끔 '에브리타임'(대학생활 플랫폼 앱)에 들어가는데,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혜택을 보고 사는지 싸우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거긴 '문과 대 이과'로도 자주 싸우고, 다른 대학을 비하하는 글도 올라온다.
'젠더' 관련 논의 자체가 터부시되는 분위기와 억울하게 성범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하소연도 나왔다.
▶차정원=말 한마디 잘못하면 나락으로 갈 수도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가 불법 촬영 중이라고 오해를 받을까 신경을 쓰게 된다. 여자가 겪는 불안을 이해하지만, 남자들이 느끼는 불안도 상당하다.
◆세대 내 격차…불평등·불공정
같은 청년 세대 내에서도 부모의 재력 등에 따른 격차가 상당하다는 점에 청년 대부분이 공감했다.
▶차정원=같은 학과 동기 중에 대기업 집안 자제가 있다. 그 동기가 학교에 타고 오는 차는 매번 바뀐다. 벤츠, 아우디, 페라리, BMW 등, 굉장히 위화감이 든다. 이제는 SNS를 통해서 소식을 볼 뿐 거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상대적 박탈감마저 안 느껴진다.
세대 내 격차에 대한 인지는 대학 입시, 취업 등 우리 사회에서 '주요 관문'으로 여겨지는 시기에 많이 이뤄졌다.
▶정우연=고등학생 때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정시로 대학을 간 뒤에 편입으로 지금 대학교에 다닌다. 학종은 부모의 정보력 싸움이나 다름없는데, 나는 부모님이 안 계시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대학 입시에 대해 전혀 모르시니까 그때 '진짜 다르구나'라는 걸 느꼈다.
▶강혜진=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사업을 크게 하신다. 그 친구는 한때 아버지의 도움으로 어떤 카페를 인수할지 고민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버지 회사에 들어갈지 말지 고민 중이다. 나는 집안의 지원을 받지 못해 대학원 진학도 쉽지 않았다. 지금도 학비 마련을 위해 조교 일을 병행한다.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실감하는 '지역 간 격차'
청년들은 취미 생활을 즐기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대구와 수도권과의 격차를 실감하기도 했다.
▶김수영=본가는 경기도인데 대구에 오면서 수도권 생활이 엄청난 혜택이라는 알게 됐다. 공연 등 문화생활을 하고자 서울을 오가는 불편을 겪었기 때문이다. 대구의 친구들은 공연을 보러 힘들게 상경한다. 밤늦게 버스를 타고 내려오거나, 숙소를 잡아서 하룻밤 자야 한다.
▶홍다겸=주변 친구 10명 중 7명은 서울로 가고 싶어 한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최근 대외활동을 알아보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서울에는 전시회와 화장품 체험 등 각종 서포터즈 활동이 많다. 대구는 그런 기회가 부족하다. 대구엔 큰 기업이 없는 것도 문제다. 다른 지역보다 임금 수준이 낮은 편인 점도 청년들이 떠나는 요인 중 하나다.
가부장적인 분위기로부터의 탈피 등을 이유로 대구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청년들도 있었다.
▶정우연=일자리 문제를 비롯해 즐길 수 있는 문화 요소도 수도권에 몰려 있어서 서울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엄한 편이어서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무조건 타지로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을 선택하기도 했다.
◆직장 등에서의 부당 행위·갑질
청년들은 직장과 학교 등 상하관계 속에서 폭언, 갑질 등 부당한 일을 당해도 낮은 지위 때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민=특성화고 3학년 때 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직원들에게 억세게 굴던 아저씨(상사)들이 있었다. 한 차장은 가족 욕까지 서슴지 않을 정도로 폭언이 심했다. 특히 그 차장에게 심하게 당했던 동료에게 내가 회사에 알리자고 말했지만, 동료는 "회사가 내 말을 듣겠냐, 차장 말을 듣겠냐"면서 포기했다.
▶강혜진=지도교수가 그야말로 '목숨줄'을 쥐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심부름을 시켜도 그냥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상의 없이 연구비를 줄여서 면담을 통해 항의하니 "너희 MZ들은 돈을 밝힌다. 그런 식으로 돈에 너무 신경 쓰면 안 된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 외에도 수당 지급, 최저임금 보장, 근로계약서 작성 등 기본적인 부분마저 지켜지지 못한 경우를 겪었다.
▶홍다겸=상업고를 나와 19살 때부터 20살까지 1년 간 세무사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직원이 4명뿐인 회사여서 수당 지급 체계가 없었다. 세금 신고 등 일이 몰릴 때 자정까지 야근했지만 별다른 수당을 받을 수 없었다.
▶김수영=군대 가기 전에 코인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최저임금보다 적게 받았다. 모집 공고에는 '최저임금 보장'이라고 했지만, 사장은 "여긴 노동 강도가 낮으니까 이 정도 받는 게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영어학원 아르바이트 때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육아
쳥년들은 연애보다 자기개발과 취미 생활 등을 더 우선순위에 두거나, '집값' 등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과 육아에 자신 없어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차정원=연애를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못 하는 것'이다. 일단 서로 마음에 들어야 하고, 타이밍도 맞아야 하고,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사실 연애를 하지 않아도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기도 하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고, 에너지 소모가 발생하니까 굳이 연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정우연=현재 남자친구와 애정 표현으로 "같이 살고 싶다"라고 하지만 사실 아직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해보진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에게 폭언하는 할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잘 믿을 수 없게 됐다. 결혼해서 누군가와 엮이고 싶진 않다.
▶김수영=청년들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결국엔 '집값'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다면 나와 아내 중 한 명은 육아를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댁이나 친가 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도 많은데, 부모님들께 너무 죄송할 것 같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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