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형이랑 논밭에서 민물게를 잡고 놀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른 기억은 점점 잊히는데 형과의 추억은 죽기 전까지 못 잊을 것 같아."
◆곧 고향 돌아갈 줄 알았지만…70년 넘게 생이별
이산가족 1.5세대인 김주형(86) 씨는 생사도 알기 힘든 그리운 친형과의 추억을 고백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평안북도 영변군 소림면 출신인 김씨는 6·25 전쟁이 터지기도 전에 집안이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1946년 가을쯤 급작스럽게 고향을 떠나야 했다.
김씨가 고향에서 추방당했던 건 당시 북한이 급진적으로 단행했던 토지개혁 때문이다. 진주김씨 종갓집이었던 김씨 집안은 영변군에서 500마지기 논에 여러 소작농을 거느린 유복한 집안이었다. 북한은 지주들의 땅을 무상으로 몰수하고 반발하는 낌새를 보이면 반동분자로 몰아 고향을 떠나게끔 했다.
당시 7살이었던 김씨는 어머니와 어린 두 여동생과 함께 남한에 내려왔다. 김씨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10살이었던 형은 북에 남았다. 김씨는 "김일성 세력이 곧 몰락할 거라고 생각하고 곧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며 "가족과도 평소처럼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만 나눴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향에 다시 갈 수 있을거란 희망은 희미해져갔다. 김씨의 어머니인 故이숙영씨는 88세의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고향에 두고 온 큰아들 생각에 한평생 그리움에 사무쳤다. 김씨는 "평생 북의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했던 어머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며 "세월이 흘러도 설, 추석 명절만 되면 가족 생각에 눈물이 난다"고 했다.
◆수년째 멈춰버린 이산가족 상봉…이제 '3만7천 명' 남아
남북관계 경색으로 이산가족 상봉 중단이 수년째 장기화되는 가운데 고령화로 등록 이산가족이 4만명도 남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15일 '제2회 이산가족의 날'을 맞았지만 이 같은 현실에 이산가족의 아픔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15일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 전체 이산가족 13만4천158명 중에서 71%에 이르는 9만6천352명은 이미 숨졌다. 또 지난 2018년 8월 문재인 정부 시절 이산가족 상봉을 끝으로 약 6년 사이 1만8천785명이 상봉을 기다리다 숨진것으로 확인됐다.
생존 이산가족도 대부분 80·90대 고령층이다. 지난달 말 기준 생존 이산가족 가운데 90세 이상이 1만2천10명, 80세 이상이 1만3천120명으로 전체의 66.5%에 달했다.
이북5도사무소에 따르면 과거 민간 차원에서 이뤄졌던 이산가족 상봉, 생사확인, 서신 교환 등도 남북관계가 단절되면서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의철 이북5도사무소 대구사무소장은 "대구에 계신 이산가족 1세 어르신들은 살아계셔도 거동이 힘들고 치매 등 노환도 겪고 계신다"며 "북한에서 모든 대화채널을 다 끊어버린 상태라 이산가족 상봉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생사확인 등 비대면 교류라도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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