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규덕의 밀리터리 뉴스] 무인함정의 시대, 해전의 패러다임을 뒤흔들다

무인함정의 등장으로 바뀌는 해군 전략 지형
K-방산의 중심, 구미에서 열리는 무인수상정 시대
위성통신 기술이 결정하는 미래 해전의 승패

우크라이나군의 수상무인정
우크라이나군의 수상무인정 '마구라(MAGURA) V5'가 흑해를 항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총국 제공

전쟁의 양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해전 방식에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무인수상정(USV)과 같은 첨단 무기체계가 해군 전략의 중심에 서며 해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무인함정의 위력

우크라이나 전쟁은 무인수상정의 잠재력을 극적으로 입증했다. 올해 2월 우크라이나군은 사람이 타지 않는 무인수상정 마구라5를 이용해 러시아 흑해함대를 공격, 러시아가 흑해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을 막아냈다.

이는 해군력이 미약한 국가도 무인체계를 통해 해양대국의 제해권을 저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카메라와 위성 통신 장치, 선수에 탄두를 탑재한 소형 무인 선박을 100대 이상 건조했다. 스타링크 위성통신과 결합해 먼 거리에서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이 무인수상정들은 러시아의 상륙함, 미사일 코르벳함, 순찰선 등을 공격하며 전황을 뒤집었다.

◆ 한국 해군의 '네이비 씨 고스트' 프로젝트

세계 군사 선진국들이 유·무인 복합운용체계(MUM-T)를 발전시키는 가운데, 대한민국 해군도 해양 유·무인 복합체계인 '네이비 씨 고스트(Navy Sea Ghost)'를 추진 중이다.

이는 인명 손실을 최소화하고 대함전, 대잠전, 대기뢰전 등에 활용되는 미래 전장의 핵심 전략으로 분류된다.

특히 무인수상정은 항만과 해상의 감시, 정찰, 해상 플랫폼 보호 등을 위해 개발된 무기로, 북방한계선(NLL)을 관리해야 하는 한국에는 필수적인 장비로 꼽힌다.

육군에 많은 자원이 편중되는 국내 특성상, 만성적인 해군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LIG넥스원의 무인수상정 해검Ⅱ. LIG넥스원은 최근 해군의
LIG넥스원의 무인수상정 해검Ⅱ. LIG넥스원은 최근 해군의 '정찰용 무인수상정 체계개발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LIG넥스원 제공

◆ LIG넥스원의 선도적 역할과 구미의 부상

최근 해군의 정찰용 USV 체계개발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LIG넥스원은 2015년부터 해군과 함께 USV '해검(海劍)' 시리즈를 개발해왔다.

해검-Ⅱ는 수중에서 자동으로 진수(무인함정을 물에 띄우는 과정)와 회수(임무를 마친 무인함정을 다시 모함이나 기지로 올리는 과정)가 가능한 수중 플랫폼(ROV)을 탑재하고, 해검-Ⅲ는 전방에 12.7㎜ 중기관총과 2.75인치 유도로켓(비궁) 발사대를 장착했다.

해검-Ⅴ는 함 탑재 전용 USV로, 의심 표적 발생 시 모함에서 분리돼 표적을 식별하고 즉각 대응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K-방산도시 구미는 무인수상정의 메카로 거듭날 전망이다. LIG넥스원은 지난해 11월 경북 구미 공장에 무인수상정 전용 체계통합시험동을 준공했다. 이곳은 4척의 무인수상정을 동시에 조립·점검할 수 있는 크레인 시설과 약 1천 톤 규모의 수조를 갖추고 있다.

또 구미 낙동강에는 무인수상정 테스트베드가 조성되고 있어, 구미가 무인수상정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LIG넥스원 구미하우스에서 열린
지난해 11월 LIG넥스원 구미하우스에서 열린 '무인수상정 전용 체계통합 시험동 준공식'에서 참석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매일신문DB

◆ 국내외에서 가속화되는 무인함정 개발 경쟁

한화오션은 지난해 '고스트커맨더'라는 이름의 6천 톤 급 무인전력지휘통제함을 공개했다. 이 함정은 다양한 형태의 무인항공기(UAV), 무인수상함(USV), 무인잠수정(UUV)을 탑재해 해상에서 복합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전 세계 해군도 무인체계의 실전 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미 해군은 운용 중인 USV '마리너'와 '레인저'를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에 배치했으며, 이는 미 해군이 아시아 지역에 USV를 전개한 첫 사례다.

특히 레인저는 적 미사일을 요격하거나 군함을 타격할 수 있는 SM-6 모듈을 탑재할 수 있어 그 전략적 가치가 높다.

또 미 해군은 이란 해군을 감시하기 위해 소형 USV를 중동 해역에 배치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과 공조한 '태스크포스 59'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중국 역시 무인함정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방산 박람회 WDS 2024에서 새로운 전투 무인수상함 '썬더러(Thunderer) A2000'을 공개했다.

이 함정은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로 지상과 공중을 감시하며, 8셀 수직발사시스템(VLS)을 갖춰 중단거리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 또 수직이착륙기(VTOL)를 위한 플랫폼도 마련돼 있어 다목적 운용이 가능하다.

한화오션이 지난해 공개한 무인함정
한화오션이 지난해 공개한 무인함정 '고스트커맨더' 조감도. 한화오션 제공

◆ 무인함정이 가져올 해전의 미래와 과제

무인함정은 승조원의 피로와 안전을 고려할 필요가 없어 고속 운항이 가능하며, 식량과 식수 보급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해안에 은밀히 배치했다가 필요할 때 투입할 수 있어 전략적 활용도가 높다.

특히 자폭형 무인수상정은 귀환을 고려하지 않아 항속거리가 두 배로 늘어나며, 가격도 유인함정보다 훨씬 저렴하다.

가장 주목할 점은 무인수상정이 적의 대형 함정을 단번에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보듯이 기존의 전력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인함정을 통해 전황을 뒤집을 수 있다.

원웹의 위성망을 활용한 한화시스템
원웹의 위성망을 활용한 한화시스템 '저궤도 위성통신 네트워크' 가상도. 한화시스템 제공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최신 위성통신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스타링크와 같은 대용량 양방향 위성통신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의 무인수상정은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해군도 무인수상정의 작전 반경을 넓히기 위해 최신 위성통신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LIG넥스원은 향후 저궤도 상용위성과 연동해 작전 반경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화시스템은 이미 영국 우주인터넷 기업 원웹(OneWeb)과 협력해 저궤도 위성망을 활용한 군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이러한 기술력은 무인함정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필수적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무인함정의 등장은 해전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대한민국 해군과 방산업계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미래 전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경북 구미를 중심으로 한 무인수상정 산업의 발전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무인전력 강화의 시대에 어떤 혁신과 발전이 이루어질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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