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바보야, 문제는 민생이야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지난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는 이 슬로건을 내세워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 당시 미국은 유례를 찾기 힘든 경제 침체기였다. 유가 상승과 고금리 정책, 소비 둔화에 따른 경기 위축이 이어졌다.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물가는 치솟았다. 걸프전 장기화로 악화된 상황에서 '아칸소 촌뜨기'가 승부수를 던져 성공한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방증(傍證)이다. 이 슬로건은 32년이 지났지만 전 세계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올해 추석은 하도 더워서 '하석(夏夕)'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명절 밥상머리 화두는 민생 문제와 의료 공백 사태였다. 각 가정에서는 매년 올라 평소에도 감당이 안 되는 식재룟값이 명절 때는 체감상 더욱 큰 짐으로 다가왔다. 먹거리 가격이 오르게 되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그리 높지 않아도 소비자들은 체감을 하지 못한다.

수출이 11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어 다행이지만 내수가 경기 개선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대기업이 대한민국 경제 수치를 견인하고 있는 형국이다. 두 산업이 부진하면 무역수지 자체가 무너지는 상황에 내몰린다. 건설업, 제조업은 이미 벼랑 끝에 내몰렸다. 민간소비까지 침체되면서 내수경제는 급전직하(急轉直下)하고 있다.

반도체·자동차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출이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그 온기가 중소기업까지 퍼지는 '낙수효과'는 미미하다. 지난해 전체 중소기업의 40%를 넘는 사업체가 순이익을 내지 못하면서 '당기순이익 0원 이하'를 신고했다. 소상공인은 코로나19 위기 시절 입었던 타격이 내상으로 그대로 남아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고용원 없이 가게를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인 이른바 '나 홀로 사장님'은 5년여 만에 처음으로 12개월 연속 감소했다.

상반기 기준 실질임금은 354만3천원으로 전년 대비 0.4% 줄어든 상태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돈의 실질적인 가치를 평가하는 실질임금이 줄었다는 것은 급여 인상분이 오르는 물가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의미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는 청년이 7월 기준 44만3천 명을 기록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실물경제마저 무너지면 가정이 해체되는 지옥(地獄)이 펼쳐질 수 있다. 서울의 새 아파트는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지만, 비수도권 아파트는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추석 민심에서 보듯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혐오는 극에 달하고 있다. 민생은 소홀히 하면서 정쟁만 일삼고 있는 탓이다. 정부와 집권 여당, 제1야당은 다음 선거가 아직 멀었고 임기가 보장됐기 때문에 국민들은 안중(眼中)에도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판이다. 모두 지난 총선의 결과를 너무 쉽게 잊은 듯하다.

국민의 요구는 거창하지 않다. 정치권은 말로는 민생을 정말 걱정한다면서 행동은 굼뜨기만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정부의 책무는 물가 안정이다. 민생을 생각한다면 물가와 집값을 잡고, 자영업자·취약층을 보호해야 한다. 정부는 당장 실물경제 상황을 개선시키는 노력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수출 통계와 수치로 만족해서는 국민의 삶을 개선시킬 수 없다. 거대 야당도 포퓰리즘이 아닌 민생을 위한 정책 마련을 위해 여당과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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